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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5.18 재판의 패자는 518 단체들
12.12-5.18 재판 판결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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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5.18 재판의 패자는 518 단체들



   518광주폭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단 열흘간 지속된 사건이었음에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폭동이 왜,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모르고 있는바 아마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람들이 혼동하며 가장 어려워하는 사건일 것이다.  사실, 이 사건처럼 자료가 많이 공개된 사건도 드물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국민은 이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모르는 것이 무리도 아닌 이유는 많은 518단체 사이트에 있는 자료들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혼동을 가져다 주려는 의도로 게시되었기 때문이다.  

   518단체의 주장과 자료들이 주는 착각 중의 하나가 전남대 학생들이 518시민군 주축이었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당당하게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고3학생으로 신분 위조하여 등장시키며,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였다는 시민군 대장의 학력과 신문을 위조하여 육사 출신 예비역 대령으로 등장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518단체가 감추어야만 하는 사실이 있다.  박관현과 전남대 운동권 및 학생간부들은 5월 17일 야간과 5월 18일 아침 사이에 한명만 남고 모두 광주 외곽 산장에 가있었으며,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광주사태의 전개 과정을 알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가 시민군의 총기 무장 시점이다.  그럼에도 518단체들은 시민군의 총기 무장 시점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5월 21일 오후라고 우기기에 사람들이 혼동하게 된다.  그러나, 조총련이 데리고 온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의 영상물도 시민군이 이미 5월 20일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음을 명확하게 증거하지 않는가.  KBS가 푸른 눈의 목격자라고 치켜 세우는 힌츠페터는 단지 5월 20일 오후~21일 아침, 5월 26일 오후~27일 아침의 광주를 보았을 뿐이다.


5월 21일의 무장시민군

   518 단체들은 힌츠페터의 영상물을 홍보해 왔다.  그러나, 힌츠페터의 영상물도 518 단체가 감추는 사실을 폭로한다.  518 사이트 자료들에는 영상물과 사진의 사건 일자를 밝혀있지 않으며, 시위대가 금남로 일대에서 평화시위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힌츠페터의 영상물과 사진은 무장시민군이 광주외곽에서 광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디서 수천 정의 총기와 군용 트럭 등의 장비를 확보하였는가?  

   KBS는 영상물 배경 음악으로 애국가를 넣었지만 조총련의 부추김으로 난생 처음 한국에 온 힌츠페터가 그 노래가 애국가였는지 알 수 있었겠는가?  위의 동영상은 5월 20일 오후에 광주 시내로 무장시민군이 진입하는 장면에 이어 5월 21일 아침 무장시민군이 실탄을 장진하고 도청을 향해 집결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 '화려한 휴가'가 보여주는 5월 21일과 비교해 보라.  영화는 마치 시민이 도청광장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준다.  518단체들이 진실을 숨기고 국민을 속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시민군 간부들이 12.12-5.18 재판 고소인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총탄에 여러 군경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은 군인들에게 누명을 씌우지만 상당 수의 시민군이 시민군 총탄에 희생당하였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들추어낼 수 있다.  언제나 시민군 편에서 먼저 발포하며 선제 공격하였다는 사실도 분명한데도 시민군 발포 명령자의 책임을 묻지 않는 나라의 법에는 공정성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518단체 관련자들은 그들이 법리에서 패배하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는 듯이 보인다는데도 그들이 어떻게 고소인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법리에서 패배하였으며, 판결에서도 이긴 것이 아니다.  어차피 판결은 문민 독재자 영삼이 아저씨가 정해 놓은 것이었다.  시대정신에 실린 영삼이 아저씨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경남 합천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잡아들일 때 "하루 종일 (방송이) 생중계를 하고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그 때 내 생각은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대법원 판결까지 받게 한 뒤 1년 동안 감옥에 보내놓고 내가 퇴임하기 전에 풀어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뒤 석방했다.">

   518측 고소 사유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 18일 경상도 군인들에게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삼이 아저씨 검찰은 전혀 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12.12-5.18 재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누명을 오히려 상당히 벗겨주었다.  여전히 518측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경상도 군인들에게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악성유언비어가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하에서 10년간 좌익 세력이 과거사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막대한 혈세를 펑펑 쓰면서 전국을 뒤지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폭동진압에 관련되어 있었다는 증거를 초조하게 찾았는가?  만약 찾아내지 못하면 유언비어를 퍼뜨린 쪽이 명분을 잃기 때문이다.  "전두환 광주학살"은 사실이든가 유언비어인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유언비어이다.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주장은 유언비어요, 법리로 따지면 유언비어를 퍼뜨린 쪽이 사기꾼이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어떤 이를 고소할 적에는 고소한 쪽에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여야 하며 만약 그러지 못하면 무고죄에 해당할 것이다.  고소하는 쪽에서 이 유언비어를 맹신하는 이들이 많고, 우리 목소리가 크니 이 유언비어를 맹신하여 달라고 우긴다 해서 법리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경상도 군인들에게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은 어디서 왔는가?  직접 듣거나 확이된 정보인가?  아니면 사기꾼들이 마구 지어낸 유언비어였는가?  그리고, 아무런 근거없이 유언비어에 근거하여 고소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었는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경상도 군인들에게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고 지시했다는 유언비어는 광주사태 당시 유언비어였는데, 광주사태 당시 유언비어 퍼뜨린 사기꾼들은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었는지조차 모르고 공수부대 대장이라고 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고, 전두환 장군으로만 언급하여 공수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이었다는 착각을 국민에게 주고 있음에 주목하라.)  그런데, 그 유언비어가 12.12-5.18 재판 당시에는 "12 · 12사건으로 군부를 장악한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탈취하려는 사전계획 하에 광주사태를 의도적으로 야기했다"는 주장으로 바뀌어 시민군 간부들이 518단체들 대표 자격으로 그 주장을 고발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컸다.  그러나, 그들이 그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시민군 간부 역시 광주사태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혀 시민군이 아닌 한홍구가 광주사태 박사 행세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라.  김대중이 한화갑과 이해찬 등 시민군과는 거리가 아주 먼 수십 명의 동교동 정치인들에게 추가 유공자 포상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이것은 서울에서 5월 중순에 있었던 사건들과 광주사태는 한 묶음이었음을 김대중이 자신도 알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김대중이 유혈폭동을 선동하며 다니던 5월 중순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5월 10~11일경 심재철, 유시민, 한홍구 등 당시 서울대 운동권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괴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광우병 괴담이 돌듯이 그때도 군부 쿠데타 괴담이 돌았다.  심재철, 유시민, 한홍구 등은 그때 그 괴전화 유언비어를 맹신하고 서울의 각대학교에 그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5월 15일 서울역 집회 때 십만 명이 모였는데, 민주화 운동 이슈가 있어서가 아니라 유언비어를 맹신하는 미개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시위구호는 실로 이율배반적이었다.  만약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기에 하는 시위라면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보호하기 위한 시위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위구호는 "최규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신현확 내각 총사퇴" "(직선제) 개헌 반대" 등이었다.  왜 "최규하 물러가라"고 외치는지 심재철이 알았을까?  그는 시위구호의 의미도 몰랐을 것이다.  단지, 김대중이 이해찬 시켜 배후 조정하는 대로 움직였던 것이니깐.  유시민에게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였던 이유를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까?  

  한홍구는 김대중이 "제2의 동학란이 일어나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월남처럼 민중봉기가 일어나야 민주화가 된다" 등의 선동적 연설을 하며 돌아다녔을 때 그것이 바로 무장유혈폭동을 선동하는 것이었음을 알았을까?  동교동이 괴전화 자작극으로 군부 쿠데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던 5월 10일경 이미 김대중의 단체 국민연합 사무국장 윤상원은 광주에서 무기탈취조를 조직하고 있었다.  김대중이 말하는 "제2의 동학란"이 바로 유혈폭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마 운동권이 제작한 교과서는 1980년 5월의 시위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였다는 착각을 주려고 제작된 듯하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였다.  그리고 김대중이 그토록 격렬하게 직선제 반대 시위를 선동하였던 것은 신민당 경선에서 김영삼에게 밀릴 것이 뻔하니깐 전국적 민중봉기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고 스스로 대통령 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대중이 전국적 민중봉기 공작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북한도 전국적 민중봉기 공작을 할 간첩과 공작원들을 남파하고 있었다.

   김대중이 "민중봉기가 일어나야 민주화가 된다"고 하였을 때 1975년 3월 월맹이 월남 중부지방 다낭에 창군한 시민군이 봉기를 일으켜 4월 월남을 패망시킨 것을 모방하여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자는 것이었다.  광주시민군은 시민군 용어의 유래를 아는지 모르지만 월맹이 미국의 참전을 막는 수단으로 월남 중부 지방에서 창군하여 수도 사이공까지 민중봉기를 확산시키는데 활용한 군대를 말한다.  월남식의 민중봉기가 김대중의 집권 전략이었으며, 김일성의 적화통일 전략이었다.

   518자료들은 김대중이 그 당시 감옥에 있었기에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광주사태가 일어난 것이라는 착각을 국민에 주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5월 17일까지도 김대중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5월 19일까지 하야할 것을, 신현확 총리 내각이 5월 19일까지 총사퇴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에도 518단체들은 이 사실을 모르거나 감춘다.  김대중은 5월 22일 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켜 새 내각을 임명하고 스스로 대통령이 될 예정이었으며, 학생운동권 거사를 위해 5월 16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전국총학생회장단 연석회의가 소집되었다.

   5월 19일 전국대학교 벽보에 대자보로 붙이도록 김대중이 보낸 유인물이 그날 운동권에 전달되었는데, 5월 19일 서울 몇몇 대학교 벽보에 붙었다.  서울의 운동권조차 김대중이 5월 17일 밤 김대중이 연행되었음을 까맣게 모른채 5월 19일 대자보를 돌렸던 것이다.  하물며, 5월 18일 아침에 깨자마자 광주시민이 그 사실을 알았을리 만무하다. 단지, 김대중의 국민연합 사무국장 윤상원이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 김대중 연행을 지휘한 이종찬을 김대중이 훗날 김대중 후보 선거위원장, 김대중 정부 인수위위원장, 초대 국정원장 등으로 등용한 것은 김대중 연행이 김대중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인데, 김대중이 고맙게 여기는 일에 광주시민이 분노하였을 리 만무다.

   5월 10일경 서울대 운동권에 걸려온 괴전화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제보였다.  즉. 군부 쿠데타가 완료되었다는 제보였다.  그것이 동교동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은 그 괴담의 자극으로 5월 15일 일명 "서울역 집회" 시위가 있었을 때 동교동이 경호원까지 총출동해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수 있다.  그런데, 5월 19일 대자보에서는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다" "전두환에게 정치적 야심이 있다" "전두환은 유신잔당이다" 등의 선동적인 문구들이 있었다.  그 당시의 김대중의 전두환 거세 전략은 학생들에게 "전두환은 유신잔당이다"라는 인식을 주어 적개심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광주사태 당시의 그들의 주장과 12.12-5.18 재판 당시의 그들의 주장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에는 김대중 일당이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다" "전두환은 유신잔당이다"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었다.  만약 12.12사태가 쿠데타였다면 그런 주장을 하였을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12.12-5.18 재판 때는 김대중 일당의 주장이 확바뀌어 12.12사태가 쿠데타였다는 주장을 하였다.  판결문 역시 마치 전두환이 유신헌정을 무너뜨리는 반란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김대중은 5월 22일을 기해 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으며, 그 준비과정으로서 5월 16일 전국총학생회장단 연석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대학생 중 몇명이 주동자 명단을 치안본부에 넘겨주었다.  김대중의 내란 음모에 참여한 운동권 중 서울에서 노동계가 없었으나, 광주에서는 김대중의 국민연합 사무국장 윤상원이 노동계와 청소년들 동원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  주동자 명단이 몇몇 학생들에 의해 폭로되었을 때 두가지 반응이 있었다.

   비교적 김대중 내란 음모의 소극적 가담자였던 서울 학생층 주동자들의 반응은 은신하라는 것이었으며, 5월 17일 밤에 전남대 학생회 사무실에 전화걸어 전남대 운동권과 학생회 임원들도 속히 도주하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광주사태 때 전남대 운동권은 광주에 없었으며,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5월 26일 이전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이미 유혈폭동 선동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던 윤상원은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거사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갔으며, 서울의 운동권도 참려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시위 선동 유언비어를 서울 운동권쪽에 계속 전했으며, 서울의 운동권은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와 삐라 등을 제작하여 대학가 벽보에 붙이거나 시가지에 뿌렸다.  

   1980년 5월 18일 아침 윤상원은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 죽이자"는 구호 선창함과 더불어 폭동 선동을 시작했다.  (그는 5월 25일 무기 반납을 호소하러 광주에 방문하신 최규하 대통령께 무기 반납 조건 중 하나로 전두환 사형을 요구하였음.)  윤상원이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 죽이자"는 구호를 외쳤을 때 그 의미는 고려의 정몽주처럼 4공화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던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 죽이자"였다.  즉, 김재규를 체포함으로 4공화국에 충성한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 죽이자"였다.

폭도들의 시위 구호 - 전두환 찢어 죽여라

   사실이 이러함에도 12.12-5.18 재판 때는 518단체들이 전두환이 유신정권 반역자라고 주장하며 고발하였으니, 전두환이 박정희의 양자라고, (김대중 재야세력이 전복시키려 하는 4공화국을 끝까지 수호하려 할 인물이라고) 했던 광주사태 당시의 주장과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따라서, 518단체들이 12.12-5.18 재판 판결을 지지할 때 (전두환이 유신정권에 반기를 들었다고 주장할 때)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자라던 광주사태 당시의 그들의 주장은 허위사실 유포였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렇듯 그들의 주장이 일관성이 없기에 법리상으로 그들이 승자가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http://study21.org/518/document/president_reply.htm






   http://cafe182.daum.net/_c21_/bbs_list?grpid=rUoh&fldid=3IBb에서 237, 240, 241, 242 번 글들을 열어 첨부 파일을 클릭하시면 <검찰질의에 대한 전두환 전 대통령 각하의 소견 및 논평>을 그림 파일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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