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연구사료

12.12-5.18 재판 판결의 모순점
12대 대선은 미국식 간선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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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의 미국식 간선제 선거가 체육관 선거였느냐고?



   작금의 광우사태는 사기꾼들이 괴담을 퍼뜨릴 뿐만 아니라, 그 괴담에 대한 맹신을 강요하는 시위인바, 이처럼 사기꾼들이 퍼뜨린 소문과 객관적 사실은 크게 다른 예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종종 있었다.  출범과 동시에 삼청교육대를 폐지한 정권이 바로 5공화국이었음에도 운동권 미디어의 영향으로 대다수 국민들은 마치 5공 시절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사람들이 있었던 양 속고 있다.  체육관 선거 역시 5공에 대한 부당한 누명이요, 운동권이 조작한 유언비어이다.  왜냐하면 체육관 선거를 영구히 폐지한 정권이 바로 5공화국이며, 5공 시절 단 한번도 체육관 선거가 실시된 일도 없었을뿐더러 5공화국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당선된 사실도 없다.

   도대체 6공화국 직선제 선거가 4공화국이나 5공화국의 간선제 선거보다 민주적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있는가?  6공화국 직선제 선거는 너무나 고비용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7년 동안에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하신 정치자금이 총 5천억원이었으며, 그 중 절반 가량이 노태우를 통해 영삼이 아저씨에게 인수인계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7년 동안에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하신 정치자금이 고작 3천억원 정도였던데 비해 양김씨는 선거때마다 석달간 1조원을 뿌렸다고 하니 그 얼마나 고비용이었던가.  

   게다가 6공화국 직선제 선거는 국민의 금쪽같은 시간을 너무도 빼앗아간다.  우리가 어느 당을 위하여 수고하든 우리는 승리한 후보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조차 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라 걱정 때문에 생업을 잠시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무슨 선거가 그리 자주 있는가?  대선이다, 총선이다, 보궐선거다, 지자체 선거다, 교육감 선거다 등등 선거가 너무 자주 있으며, 그때마다 전국민이 좌우로 갈라져 피터지게 싸운다.  그것도 부족해서 좌파는 선거에 패배하면 광우병 괴담을 조작해내고 광우사태를 일으키는바 그 촛불시위가 석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국가 에너지를 어디에다 낭비하고 있는가?  흔히 체육관 선거라고 비아냥거리는 선거는 4공화국 시절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선거를 말하며, 경제 건국기였던 1970년대에 선거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선거였다.  1970년대는 절대로 정권이 자주 교체되어서는 아니되었던 까닭은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공약이 극과 극으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은 고속도로 건설만 반대하였던 것이 아니라, "조국 근대화 반대"가 그의 공약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육성을 시작하시자마자 정권이 교체되면 김대중이 공장을 모두 허물테니 박정희 대통령 임기가 한번 더 연장되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며, 유신헌법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운동권이 체육관 선거라고 비아냥거리는 4공화국식의 간선제는 1980년 10월 27일 5공화국 헌법이 공포됨으로 영구히 폐지되었다.  아래 동영상에서 우리는 이듬해 2월 11일 제 12대 대통령 선거인 선거가 실시되었음을 본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미국식 간선제가 실시되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5공화국 정권을 창출하였던 선거의 진실이요, 객관적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미개인들과 518픽션소설가들과 역사치매증 환자들은 이런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마저 엉터리로 써왔다.  



   아래 동영상에서 우리는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의 전두환 후보가 총투표인 수의 90.23퍼센트인 득표 4755표라는 압도적지지로 당선확정되는 순간을 본다.  바로 미국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의 선거로 5공화국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미국식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린 선거 방식으로 대통령이 선출되면, 군사쿠데타라는 주장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1981년 2월 25일 전두환 후보가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전두환 쿠데타의 증거로서 518측은 제시하며, 9달 전에 광주시민들은 그것을 미리 내다보고 폭동을 일으킨 것이 518측 설명이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사태 당시에는 아직 국민이 전두환이 누군지 전혀 몰랐었다.   김대중의 최측근이 시키는 대로 "전두환 물러가라"를 외치긴 했지만 그때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광주시청 공무원이려니 여기고 구호를 외쳤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문민독재자 영삼이 아저씨는 4공화국과 5공화국의 선거방식의 차이조차 모르거나 망각한 이들을 12.12, 5.18사건 재판 법관들 속에 포함시켜놓았다는데에 그 정치재판의 문제점이 있었다.  정말로 영삼이 아저씨가 유신헌법의 특징으로 알려진 4공화국 체육관 선거를 그토록 수호하려고 애썼으며, 그래서 4공화국식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선거가 아니라, 미국식 간선제 선거의 장점을 살린 5공화국 헌법을 따라 합헌적으로 전두환 후보가 당선된 것을 군사쿠데타로 여겼다는 말인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6공화국식 직선제의 문제점은 양김씨의 합작품이었던 IMF환난에서 드러났다.  김대중은 자신의 집권욕을 위해 IMF환난을 일으켰고, 김영삼 정부는 김대중 때문에 노동법 개정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이 기아자동차 장기파업 선동하는 것을 막지 못해 IMF환난이 닥쳤던 것이다.

   12.12, 5.18사건 재판에 관해 부언하면, 518측의 고소 대상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던 이유는 9개월후의 12대 대선에서 전두환 후보가 당선될 것을 광주시민들이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김대중 최측근이 "박관현 사망설"이란 유언비어를 퍼뜨렸기 때문이었다.  그 괴담에 자극된 과격시위대가 파출서들을 파괴하고 순경 45명을 인질로 납치하여 옷을 벗기고 폭행을 가하자 광주경찰서는 광주향토사단에 순경구조를 요청하였다.  지금 전경이 자기 나이 또래 혹은 연상의 시위대에게 맞아도 모욕감을 느끼는데, 아직 의무전경이 없었던 시대에 나이 4-50대의 기동경찰이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자식뻘되는 시위대한테 옷을 빼앗기고 맞았으니 그 모욕감이 어떠하였겠는가?  

   그날 광주경찰서의 요청을 받고 전북 금마의 7공수 33대대와 35대대에 순경 구조 명령을 내렸던 장본인은 바로 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 소장이었다.  만약 그날의 순경 구조 작전이 과잉진압이었다고 여겼기에 고소고발하였던 것이라면 마땅히 그 고소 대상은 당시 광주계엄관이었던 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 소장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김대중 인맥이기에 고소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라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광주경찰서의 요청에 따라 공수부대 투입을 한 이는 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 소장이었는데 어떻게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살인마라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가?  정녕 그런 주장은 5공화국 대통령은 체육관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유언비어나 5공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이 있었다는 괴담 못지 않게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던 것이다.


☞   5공화국 정권 창출의 정당성과 전두환 대통령의 정통성  

☞   광주사태와 광우사태의 시위구호 비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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