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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의원, 그 타박상 사인 가해자는
5.18폭도들이라오



   지난 22, 23, 24일자의 위 뉴스 동영상(2009년 3월)은 노무현의 최측근 이광재 의원이 말장난 작전이 박연차 회장 여비서의 수첩의 진실 앞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금 불법정치자금 사건으로 또 다시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바로 이 이광재가 지난 2006년 5월 18일의 5.18기념행사 때 5.18묘지를 둘러본 후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내 평생 광주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http://polinews.etimes.net/total/news_view1.htm?no=70099&page=27&pkey=20000 ).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듯 이광재의 이 광주사태 발언과 동시에 손도끼 ´이광재 패러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패러디물은 인터넷 홈쇼핑 사이트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미제는 팔지 않는 386쇼핑´에서 "군대가기 겁나시죠?"라는 멘트와 함께 ´병무청 인증 단지용 손도끼 3종 세트´라는 상품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386철강에서 제조한 이 상품에는 "꼭!!! 오른 검지에 사용하세요"라는 설명까지 잊지 않았다. 이광재 의원이 뭐라고 변명하든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오른손 검지를 잘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그를 네티즌들은 이런 패러디 표현으로 비꼬았던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런 "이광재의 죄"를 이광죄라 지칭하였다. 그런데, 어디 이광죄가 그뿐이었겠는가?

이광재 의원이 5.18묘지에서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내 평생 광주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말한 바로 그때가 또 하나의 이광죄, 즉 러시아의 석유를 개발하겠다던 노무현의 약속을 지킨 죄가 드러나던 때였다. 그 악속을 지키는 시늉을 하기 위해 러시아로 6백 20만달러를 송금하여 떼이게 하고, 350억원이 나라돈 350억원이 허공으로 증발하게 하였던바 이를 가리켜 "이광재 게이트"라 한다.



이광재 의원이 광주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그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가 바로 김대업씨 사건이다. 2002년 16대 대선 때 새천년민주당은 희대의 사기꾼 김대업씨를 고용하여 병풍사건을 조작하면서 그를 의인이라 불렀던 노무현 측근들은 지난해 2008월 1일 8일 김대업씨가 폭로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말을 바꾸었다. 그보다 사흘 앞선 5일 김대업씨가 글을 올려 “대통령을 도구라 부르는 측근들이 결국 대통령을 도구로 전락시켰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들을 비판하자 이광재 의원은 “김 씨를 만난 적도 없고 할 말도 없다”고 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nc_&n=200801080110. ) 그런데, 자기가 불리할 때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광재의 말은 어디까지 사실인가? 지금도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받은 사실 없다고 한 거짓말이 탄로나고 있지 아니한가!

이광재가 5.18묘지에 올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리고, 5.18묘지의 상징적인 인물이 박관현이기에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도 진우로 등장한다. 아래 사진 왼편의 박관현이 바로 영화 "화려한 휴가" 진우의 실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고등학생이 아니라, 나이 29세의 대학생이었다. 5.18사기꾼들은 그를 18세의 고교생으로 등장시켰으니 실제인물과는 사제지간이 될 수 있을 만한 연령차였다.



박관현은 1980년 봄 김대중의 국민연합이 지원하여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김대중의 내란음모에 이용되고 있던 인물이었으나, 영화 속의 진우는 5월 18일 간호사 신애와 함께 극장에 갔다. 그러나 실제인물 박관현은 당시 김옥길 내무부장관이 최규하 대통령께 보고하던 시위의 한 주동자였다. 5월 18일 하루이틀 전에 급박하게 돌아가던 그 상황을 신현확 당시 총리는 훗날 이렇게 증언한다:

<<예를 들면 김옥길씨가 아침에도 점심에도 쫒아와서 “학생들 움직임이 어떻고 어느 학교가 저짜고... 만나기 싫다는 거야. 귀찮은 소리. 위급한 사태에 대한 보고도 귀찮다....그러니까.. 최대통령이 아무런 결정을 안하니까 전부 내 한테 온단 말이야. 정부안에서도 다 알지. 모든 일은 신총리가 다 한다. 이러니까 틀림 없이 신총리가 실권을 잡는다. 모든 결정을 신총리가 하고 있다. 신총리가 독재한다. 이런 식이거든.

그래가지고 학생들이 데모하면서 서울역 앞에서 5만명이 모였을 때, 그 때 플래카드가 “물러가라 신현확, 불쌍하다 최규하” 이러카고 데모하는 거야. 나한테 그렇게 보고가 올라오는 거야. 그래 내가 뭐를 우째? 나를 물러가라고 하는 거야 미운 놈 물러가라, 그런다고 치자. “불쌍하다 최규하”는 뭐가 불쌍하나.>> (http://cafe.daum.net/518cafe/8yGb/77 )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김대중이 일으키려던 전국적 민중봉기를 시위용어상 총궐기대회라 불렀는데, 5월 20일로 예정된 학생 총궐기대회 준비를 위해 5월 16일 이화여대에서 일명 "전국총학생회장 연석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러나, 김대중이 서울 운동권에 보낸 시위 구호나 광주에 보낸 시위 구호나 동일하였기에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서울에 오지 않고 총궐기대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그 내란 음모 주동자 명단이 치안본부로 넘어가자 그 다음날 한 여학생이 전남대로 전화걸어 발각되었으니 빨리 피신하라고 했다. 당시 전남대 부총학생회장이었던 이승룡은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이날 서울에서는 앞으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인지 논의하기 위한 전국대학생대표자회의가 있었다. 아마 우리 학교에서는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저녁 7시경에 전화가 왔다. 연락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로 '지금 서울에서는 학생회 간부들이 검거되었으니 빨리 피하라'는 내용이었다. 연락을 받고 관현형 등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내란음모로 둔갑된 평화시위 에서 두번째 작은제목 "예비검속에 걸려" 이하)

그래서 진우의 실제인물은 18일 도저히 한가하게 간호사 신애와 함께 극장에 갈 상황이 아니었다. 무장시민군의 폭동이 절정에 달했던 21일 상황도 영화에서는 전혀 딴판으로 묘사되는데, 도청광장에서 총맞은 진우가 병원에 오자마자 죽었다. 그러나 진우(박관현)는 광주사태 기간 내내 여수에 있었기에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4.html ) 광주사태를 보지도 못했고, 광주사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광주사태 기폭제는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였다. 5월 18일 오후 한시반경 누군가가 "박관현이 죽었다"고 외치자 흥분한 시민들이 파출서를 파괴하며 폭동을 일으켰던 것이요, 아무도 죽은 사람 없었는데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가 뻥튀기기되어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가 되었으며, 그 유언비어가 또 뻥튀기기되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언비어 삐라가 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박관현이 근 3년 후에 병원에서 사망한 이유는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 때문이요, 광주사태 때 사람들이 죽은 이유도 그 유언비어에 선동된 무장시민군이 폭동을 일으키며 총기오발사고를 냈기 때문이었다. 

박관현은 광주사태 때 여수에 있었기 때문에 광주사태 장면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음에도 여러 해 후 사망한 박관현이 5.18 묘지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방문자들에게 마치 그가 광주사태 희생자였던 것같은 착각을 준다. 엉화 제작자가 진우를 21일 광주의 한 병원에서 죽이는 영화 "화려한 휴가"는 또 하나의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였다. 이 유언비어에서 진우를 죽인 것은 제작자이다. 그럼에도 제작자는 자기가 죽여놓고, 전두환이 죽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광재 의원과 더불어 노무현의 또 한 명의 최측근인 신계륜 의원이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는 허위사실 유포였다는 사실의 증인이다. 역시 광주 출신으로 당시 고대 학생회장이었던 신계륜은 5월 18일 광주의 박관현에게 몸 숨길 것을 의탁하려 찾아갔더니 박관현 역시 이미 어디론가 잠적해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23409 ) 영화에서 민우는 진우의 복수를 위해 무장폭동을 선동한다. 그러나, 민우의 실제인물 윤상원은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광재 의원이 5.18묘지에 올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데 희생자들 중 태반은 실제로는 타박상에 의한 사망이요, 타박상 사인 대부분이 무장시민군이 낸 교통사고였다. 그 외의 타박상 사인은 폭도들에 의한 구타였었다는 증언들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5월 20일 광주 고속터미널 앞 광장에서 충정임무를 수행하였던 이상휴 당시 3공수 특전여단 13대대 9지역 대장(대위)의 증언이 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알아보니 석축용 경치석이 실려 있었고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갑자기 차에 불이 붙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타이어 터지는 소리에 시민과 폭도들은 괴성을 질렀다. 앙상한 차체만 남았다. 갑자기 시내버스, 택시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어떤 기사는 인접 택시를 발로 차고 버스를 차고 하여 싸움이 붙었다. 자기들과 같이 차량 시위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랬다.>> (http://cafe.daum.net/518cafe/8yGb/79 )

5월 20일 타박상으로 두 명이 죽었다. 그런데 이상휴 대위는 폭도들이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운전사와 조수를 끌어내려 구타하여 현장에서 죽였다는 것이다. 만약 실제로 폭도들이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운전사와 조수를 끌어내려 구타한 사실이 있다면 이 증언이 신빙성이 입증된다. 그런데, 그런 사실에 대한 허다한 증언들이 있다. 심지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시민군들조차 그런 증언을 하는바, 아래는 시민군 김정기의 증언이다:

<<17번 버스를 타고 무등경기장쯤 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내려 사람들 틈에 끼었다. 가만히 보니 고가도로 부근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막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태워라', '죽여라' 하는 함성이 들려서 그쪽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경북 번호를 붙인 트럭이, 유리창이 산산조각 난 상태로 정차해 있었다. 한 대의 운전사는 도망을 쳐버렸고, 다른 차의 운전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의 씨를 말린다는 공수부대의 얘기에 대한 보복이었다. >>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401.html 에서 일곱번째 단락)

시민군 김정기가 목격한 사건은 이상휴 대위가 목격한 사건과 다르다. 이상휴 대위는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 운전사와 조수를 대상으로 하는 폭행 사건을 목격했고, 시민군 김정기는 경북 번호를 붙인 트럭 운전자에 대한 폭행 사건이었다. 무엇이 시위 구호였는가? '태워라', '죽여라'였다. 왜 "죽여라"고 함성지르며 폭행하였는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의 씨를 말린다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5월 20일 그런 유언비어가 퍼져나가면서 경상도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 행위들이 있었다.

그러면 어째서 경상도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 운전자들이 백주 대낮에 테러를 당하였는가? 사실, 그 사건은 20일의 차량 징발과 관련이 있다. 모든 통행 차량이 예외 없이 징발 대상이었다. 예를 들면, 시민군 김수영은 "대한통운 앞 도로에 지방에서 올라온 일반 화물트럭이 오자 시민들이 차를 주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모두 쉽게 내주었는데"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801.html )라고 증언한다. 그런데, 번호판이 경상도이면 징발 대상이 아니라 테러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5.18폭도들이 통행 차량을 징발하였는가? 그 목적은 공산주의 혁명이었음을 노동운동가 이정로는 이렇게 기술한다:

<<노동자와 혁명적 민중은 동운동 고가도로 밑의 주유소에 본부를 정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파괴, 점령하고 고속도로를 차단한 다음 모든 차량을 징발하는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화물트럭과 대형차가 선두와 양 옆을 호위하고 소형택시들이 대오를 이루면서 도청을 향한 '차량돌격대'를 편성하게 된 것이다.

이 날의 노동자계급의 대진군을 부르주아적 언론은 '차량시위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시위대'가 아니라 '전투부대'였고 '돌격대'였다.>> (http://cafe.daum.net/518cafe/8yGb/72 )


BBC International

5.18광주시민군의 우방은 미국인가 북한인가?

집단발포를 한쪽은 5.18무장단체였다

5.18시민군이 선제 발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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