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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전남도청앞 시체들은 경찰의 시체들이었다
 



  
   1988년 12월 광주청문회 때 노무현이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에 명패를 던졌던 것도 노무현이 1980년 5월 21일 도청앞 집단 발포 유언비어를 맹신하였기 때문이며, 노무현의 명패 공격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 백담사로 유배되신 것도 도청앞 집단 발포 유언비어에 속으셨기 때문이며, 1996년 5.18재판이 열린 것도 그 유언비어를 맹신하는 국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5월 21일 도청 앞에 시체 오천 구가 쌓여있었다는 유언비어가 광주사태 후에도 20여년간 지속되었으며, 그런 유언비어에는 으례히 전두환이 광주시민 오천 명 학살하였다는 유언비어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시신의 얼굴 사진들은 광주시민의 아픔과 공수부대의 잔인성의 상징으로서 국내외에 유포되어 왔었다.
최근의 영화 "화려한 휴가"도 그런 유언비어를 근거로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신들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는가?  5월 21일 도청광장에 있었던 시민군들은 그날의 총격전으로 인한 시민군편 사망자나 부상자는 없었다고 증언한다.  시민군 장준영(당시 나이 19세 재수생)은 마구 사격한 쪽은 시민군이었으며, 그 충돌에서 시민군 편에서는 사망자는커녕 부상자도 없었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그때 페퍼포그차 한 대가 다가왔다. 그 차에서 총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에 한하여 실탄과 함께 총기가 배급되고 있었다. 조금 후에 계엄군과 총격전이 벌어졌다. 어느 쪽에서부터 먼저 총성이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5분 정도 총격전이 계속되었다. 시위군중들은 다수가 흩어졌고, 20대 후반의 젊은 남자들이 주로 총기를 지급받고 총격전에서도 이 사람들이 주로 응사를 하며 저항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부상자는 생기지 않은 것 같다.>

  시민군 이재춘(당시 나이 21세)은 5월 21일 도청 광장에서 총성이 울린 이후 시민군 편에서는 사망자는커녕 부상자 한 명 없었고, 군인들만 죽었던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22일 아침 도로로 가보니 어젯밤에 총격으로 인해 시민군들은 부상 하나 없었는데, 군용 트럭 안에는 군인 일등병이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죽은 군인은 공수가 아니라 일반군인으로 운전병이었다.> (출처)

   이렇듯 5월 21일 도청 앞에 누워있었던 시체들은 그날 5분간 계속되었던 시민군의 발포와 공수부대의 공포탄 발사 이후에 놓인 시체들이 아니라, 그 사건 이전에 놓여있었던 시체들어었다.  더구나, 광주는 물론 전국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언비어와 달리 그 시체들은 시민군 시체가 아니라 순경들 시체였다.  그 사실을 당시 공수부대 초급장교였던 채수봉님은 MBC PD 수첩의 왜곡에 항의하고저 2007/09/05(14:17)에 시청자 게시판에서 "이름 : 채수봉 [SUBONG1669]" 아이디와 <영화 "화려한 휴가'를 고발하겠다.>는 제목으로 쓰신 글에서 이렇게 증언하신다:
 

이름 : 채수봉 [SUBONG1669] 조회: 28, 줄수: 4
 

영화 "화려한 휴가'를 고발하겠다.
 
 -5.18 당시 계엄군으로 참가했던 초급장교로서 비무장한 시민에게 집단 발포로 연출한 것은 사실 왜곡이며 군 명예를 훼손했기에 법적 도움을 준단면 실명으로 고발하겠다.
 -1980년 5월 21일 최초 발포(듣기로는 그 전에 계엄군 장갑차가 시동이 꺼지자 시위대가 돌로 유리를 깰려하자 공포)시에 희생자는 장갑차에 깔린 공수부대원 이었다.시민 시체는 한 구도 보지 못했으며 당일 아침 도청 바로 앞에 군 모포에 덮인 4~5구의 전경 시신만 보았다.)
 -계엄군(11공수)의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공포가 나가고 시민과 군은 철저히 분리되었으며 일방적으로 무장한 시민군에게 쫒겨 다녔다.

             
  
   그날 도청 앞에서 군모포에 덮인 4~5구의 시신은 시민군 시신이 아니라, 순경들 시신이었음을 당시 기동경찰관은 이렇게 증언한다:

내가 겪은 80년 5월의 광주(월간조선 1988년 3월호)

南東成(가명, 29, 당시 전투경찰관)

경상도 전경을 살려준 「光州 아버님」

  나는 경북 대구의 경북대학교 정외과 2년을 마치고 전투경찰관으로 입대, 전남 도경 2기동대 소속으로 광주에서 근무하다가 광주사태를 맞게 됐다.
  광주사태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던 5월20일 밤, 나는 전남도청 앞에서 데모대를 막고 있었다. 광주의 밤하늘은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불길로 환했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가끔 「펑!」하면서 치솟는 화염이 전장을 방불케 했다. 우리 전경부대는 도청 앞의 네거리 중 노동청 광주지방 사무소 쪽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네 줄로 늘어서 저쪽의 군중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노동청 사무소 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군중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데모대는 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퍼내 차에 불을 질러, 불타는 차들을 우리 쪽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트럭, 버스, 승용차, 지프 등 갖가지 차들이 슬금슬금 밀려오다가 중간 지대에서 멈췄다. 불타거나 불탄 차들이 서로 뒤엉켜 절로 바리케이드가 쳐진 형세였다.

  밤 9시쯤 됐을까, 군중 쪽에서 버스가 한 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 버스는 부서지고 불탄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와 우리 戰警부대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나는 『피해라!』하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 버스를 향해 돌을 집어 던졌다.
  그때 우리는 최루탄이 거의 떨어져 데모대가 몰려오면 投石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戰警들은 양쪽으로 쫙 흩어졌다. 버스는 속도를 늦추며 오른쪽으로 비켜 오른쪽에 있는 담벼락을 긁으면서 스르르 멈추었다.
  버스 쪽으로 달려가 보니 어둠 속에서 비명이 새나오고 있었다. 버스와 담벼락 사이에 경찰관들이 여러 명 끼거나 깔려 뒤엉켜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 어머니!』하는 신음이 들렸다. 우리는 끌어내려고 팔, 다리를 잡아당겼다. 벌써 축 늘어진 팔, 다리였다.

  거의 같은 순간 운전석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담벼락을 넘고 달아는 게 보였다. 한 사람은 이미 달아났고 다른 한 사람이 담벼락에 다리를 걸친 순간, 두 명의 경찰관들이 달려들어 이 뚱뚱한 사람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 사람은 뒷발길질을 하여 뿌리치고는 달아났다.
  우리는 플래시로 버스 바퀴를 밝히면서 사상자들을 끌어내 병원으로 옮겼다. 이들 경찰관들은 사고 당시 담벼락 밑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다. 전열(前列)에 있었던 젊은 전경대원들은 달려오는 버스를 보고 피해 달아날 수가 있었으나 이들 경찰관들은 앉아 있다가 뒤늦게 버스를 피하기 위해 담벼락에 붙어 서 있다가 버스와 담 사이에 끼이거나 깔린 것이었다.
  (편집자 주: 이 사고로 함평경찰서 소속 정춘길 경장, 강정웅 순경, 이세홍 순경, 박기웅 순경 등 네 명이 숨졌고 김대민 순경 등 네 명이 중상을 있었다.)

   이렇듯 5월 21일 도청광장에 오천 구의 시체가 쌓여있었다는 유언비어의 진실은 5월 20일 밤 시민군 차량에 학살된 4명의 순경의 시체였다.  시위대 차량에 순경 4명이 학살된 사건은 실로 세계 뉴스 특종감이었음에도 보도되기는커녕 시위대 사망자 시체들로 와전되었으며, 더구나 전두환 광주시민 오천명 학살 유언비어로 증폭되었으니, 실로 이는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이 결핍된 미개인들이 실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 아니던가!

  노무현이 누구던가!  바로 그런 미개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는 1988년 광주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 얼굴에 명패를 던지는 야만적 행동으로 자신의 미개성을 드러내었다.  청문회 스타 노무현의 진실은 사실을 배격하고 유언비어를 맹신하는 미개성이었다.  그런 노무현이 광주폭동을 총지휘한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그것은 다시한번 김정일에게 속으며, 다시한번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김정일에게 남침 통로 빗장을 다 열어주고 무슨 평화조약이라는 말인가?
 


 김정일의 무표정은 김정일의 적화야욕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김정일에게 남침 통로를 활짝 열어주면 김정일이 평화를 줄 것이라고 노무현이 우길 때 국민은 전두환 전 대통령같은 믿음직스러운 지도자를 그리워하게 된다.  반공지도자를 향하여는 맹수처럼 사납게 명패를 던지던 노무현의 손이 이번에는 북한 여성 등을  엉큼하게 쓰다듬으며 허리 아래로, 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광주사태 토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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