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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광주청문회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관련자 이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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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관련자 이신범씨 증언



   김대중의 옛 동지들 중에는 나중에 김대중과 갈라져 지금은 김대중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손충무 기자도, 김동길 교수도 김대중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는 갈라서서 김대중 세력과 싸우고 있으며,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도 김대중과 사돈지간이면서 김대중을 떠나 김영삼씨 곁으로 간 인물이었다.  심재철 의원도 지금은 광주사태 당시와 성향이 딴판이지 아니한가.  따라서 1980년 봄의 이신범씨가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그러함에도 1988년 12월 6일 광주청문회 당시의 그의 증언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아야 한다.

   탈북자들은 1980년 3월 광주에서 5월로 예정된 대규모 민중봉기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북한이 남한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킬 요원들을 그때부터 투입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하는바, 아래의 뉴스 동영상도 실제로 그 당시 침투하던 북한군들 중 일부가 국군에 의해 발견되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김대중이 광주의 운동권 윤상원을 국민연합 사무총장에 임명한 때도 그 즈음이었으며,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윤상원은 화염병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당시는 일반 시민은 화염병 제조법을 전혀 모르고 있던 때였는데, 윤상원은 이미 대량으로 준비해 놓았다가 5월 18일 광주의 파출서들을 파괴하는데 사용하였다.  



   김대중 내란 음모 연루 의혹을 전면 부정하는 이신범씨 증언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가?   그의 증언 중에는 픽션도 다소 섞여 있어 보인다.  이신범은 3월 13일 그가 문익환 목사에게 한 말을 이렇게 요약한다: "계엄령 빨리 해제 안시키면, 전두환 소장 등이 정권을 잡는 후속 쿠데타를 감행할꺼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모든 부분에 힘을 합쳐서 계엄령이 해제되도록 애를 써야 된다 하고 국회소집과 최규하 대통령에 대한 촉구를 얘기한 겁니다."  그러나 이상하지 아니한가!

   당시 헌법대로라면 최규하 대통령의 임기는 6년이어야 했으나, 최규하 대통령 본인은 1년 남짓으로 못박아 발표했었다.  그의 목적은 신속하게 헌법을 개정하고 새 대통령을 선출한 다음 물러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의 통치철학은 과도기에 안보 하나만 확실히 지켜도 성공이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이어 4공화국 헌법을 개정하고 5공화국을 출범시키는 과제가 남아있던 때에는 5공화국이 출범하기 이전까지는 비상계염이 유지되어야 했다.  그런데, 대학생 한 명과 목사 한명이 그런 중대한 국사를 결정하여 대통령에게 지시하였다는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3월 26일의 YWCA초청 연설 중 김대중은 <북한은 한쪽으로는 대화를 하면서도 간첩선을 내려보냅니다. 폭력과 무력을 통해서 남한을 뒤집어엎겠다는 소위남조선 해방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국가의 안보와 반공의 태세를 조금도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강조합니다>라고 말했다.  3월 23일에는 서울 한강 하류에서, 3월 25일은 포항 앞바다에서, 그리고 그후에도 연이어 무장간첩들이 침투하였다.  만약 이러한 때에 김대중이 계엄 해제를 요구했다면 그의 연설 내용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계엄령 빨리 해제 안시키면, 전두환 소장 등이 정권을 잡는 후속 쿠데타를 감행할꺼다"라고 이신범씨가 88광주청문회에서 증언한 말은 518측의 주장 중 일부에 철퇴를 가한다.  518측은 "12.12사태로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다"는 주장을 해왔으나, 이신범씨의 증언과 대조해 보면 그런 주장은 분명 허위유포였다.  심지어, 1988년 광주청문회 당시에도 사람들은 "12.12사태로 전두환이 정권을 잡았다"는 픽션 소설을 쓸 수 없었다.  1988년 3월 13일 당시 심지어 문익환 목사도 12.12사태를 쿠데타로 보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신범이 "계엄령 빨리 해제 안시키면, 전두환 소장 등이 정권을 잡는 후속 쿠데타를 감행할꺼다"라고 문익환 목사에게 말했었을까?  그 개연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김대중이 퍼뜨렸던 유언비어는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장군이 이원집정제를 실시하려고 한다는 유언비어였다.  전두환 쿠데타 유언비어는 5월 중순 광주 전남대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며, 3월 당시 김대중이 퍼뜨렸던 유언비어는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장군이 이원집정제를 실시하려 했다는 유언비어였다.  광주청문회에서 신현확 총리가 첫번째 증인으로 채택되었던 이유도 그런 유언비어가 1980년 봄에 정계를 진동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안개가 끼어있는 이신범씨 증언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는 문익환 목사와 만났었는데, 제2의 동학란이 일어나야 한다는 문익환 목사의 논리가 유혈폭동의 논리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운동권이 말하는 민주항쟁 논리의 출발점이 바로 문익환 목사의 민중신학이었다.  문익환 목사는 본래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했었던 인물이었는데, 신학을 공부할 때 계급투쟁이론을 그대로 가져와 성경도 계급투쟁사관으로 읽었으며, 동학란이 그가 찾은 한국적 계급투쟁의 모델이었다.  김대중이 광주사태를 선동하는 연설을 하며 돌아다녔을 때 제2의 동학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었던 것도 문익환 목사의 영향을 반영한다.  

  바로 그 문익환 목사를, 김대중이 일으키려 했던 전국적 민중봉기의 지휘부요, 518시민군 사령탑이었던  국민연합 고문 문익환 목사를 이신범씨가 1980년 3월 중순에 만났다.  1979년에도 문익환 목사를 자주 만났었는데, 1980년 3월에 어떤 거사를 논의하고 있었다.  이신범씨가 그 거사의 내용을 어떻게 둘러대던 유혈폭동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는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문익환 목사의 민중신학은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 칼 마르크스와 레닌의 세계관 덩어리인데, 유혈폭동으로서의 동학란을 민중의 계급투쟁으로서 미화하던 문 목사는 제2의 동학란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 광주사태 당시 이신범은 김대중 후원단체인 "민주 청년 연합회" 상임위의장을 맡고 있었다 (함윤식, 동교동 24시. 3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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