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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청문회 증인 소준열 장군의 증언 The Kwangju Hearing of December 19,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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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체계 이원화 주장에 대한
소준열 장군의 통쾌한 반박



위의 영상물에서 보는 대로 1989년 1월 27일 광주청문회에서 임수원 광주사태 당시 3공수여단 11대대장은 김길홍 의원의 심문에 차분히 답변하고 있다. 이날의 청문회 주요 쟁점 중 하나가 1980년 5월 20일 저녁 광주 역전에서 계엄군의 발포가 있었다는 5.18측 주장이었다. 5.18사기꾼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임수원씨는 "E-8 가스탄 발사기의 가스 소리가 기관총 소리와 흡사해서 생긴 오해"라고 증언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시민군 김수영 역시 동일한 증언을 한다. 김수영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광주역에서는 군인들이 쏘는 신호탄이 다다다다 소리와 빨간 불꽃을 내며 날아다녔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801.html). 이렇듯 계엄군과 시민군 두 당사자의 증언으로 5월 20일 저녁 광주 역전에서 계엄군 편에서의 발포는 없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된다.

아래의 동영상은 1988년 12월 19일의 광주청문회에서 박찬종 의원의 심문에 답변하는 소준열 광주사태 당시 전남북지역 계염군소장의 증언을 보여준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시기 몇해 앞서 소준열 장군이 입적하셨으나 그때는 전혀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법철 스님이 그의 입적 사실을 이렇게 서술한다: "광주사태를 군사적으로 수습한 소 장군은 말년에 화엄사의 연기암(緣起庵)에서 출가위승하듯이 하여 참회와 업장소멸의 기도를 하다가 고승이 입적하듯이 입적했다." 광주청문회 이후 몇년 남지 않은 여생을 이렇게 보내셨다면 광주청문회 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진실의 무게가 어떠하였는지를 능히 우리게 헤아릴 수 있다.



소준열 장군의 도청진압작전은 시민군의 희생을 최소로 줄인 명작전이었다. 무장시민군을 여느 시민들과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을 노려 27일 새벽 한시간 만에 광주사태를 완전 진압하였던 그의 명작전이 없었더라면 실로 광주사태는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을 만한 위험한 사건이었다. 5.18사기꾼들이 퍼뜨린 유언비어 천지를 진동하며 난무하던 때에 김수환 추기경과 달리 이법철 스님은 사태 현장에 계셨기에 그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정확히 파악하셨던바 "'화려한 휴가’는 허위날조의 극치"라는 제목으로 쓰신 글에서 이렇게 증언하신다:

<<소 장군의 사령관실에서 나오니 하늘에서는 헬기가 무수히 오르내리고, 5월의 잔디밭에는 국방의 의무를 하러 간 병사들이 적국(敵國)의 총탄이 아닌 자국(自國) 시민군의 총탄에 의해 무참히 죽어 관속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비 오는 잔디밭에 판초우의 아래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독자여 상상해보시라, 빗속의 잔디밭에 피 흘려 죽어있는 젊은 국군들을……. 그들은 국방의 의무에 채 피워보지 못한 꽃으로 광풍(狂風)에 꽃이 지듯이 죽어 있었다.

(....)

나는 비 내리는 잔디밭 판초우의에 덥혀진 죽은 국군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어 국군통합병원을 찾았다. 병원에는 시민군의 총탄에 맞은 국군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옆구리를 관통당해 죽어가는 어느 젊은 장교는 말을 못하고 어렵게 내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버스가 불타는 시가지를 걸었다. 경찰이 도망친 파출소도 찾아 보았다.>> (http://cafe.daum.net/518cafe/IEXM/13 )

위 동영상에서 박찬종 의원의 심문은 "후배인 이 삼 장군은 80년 5월에는 떠오르는 별들이었고, 대단히 외람되지만 증인께서는 사라지는 별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소준열 장군은 신군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신군부인가? 신군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당시 시위구호가 "유신잔당 물러가라"였는데, 과연 유신잔당=신군부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는가? 그리고 5.18측 편을 드는 박찬종 의원이 보기에도 소준열 장군을 신군부 범주에 넣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더구나 그는 유언비어처럼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기 위해 온 경상도 군인이 아니라 호남 출신이었다.

이날의 청문회에서 박찬종 의원의 꼼수는 지휘체계 이원화 픽션소설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어째서 5.18측이 지휘체계 이원화 픽션소설을 썼는가? 김대중이 한민통 두목 시절 데리고 있던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사건에 대해서 김대중의 논리는 자기는 두목 감투만 썼을 뿐 실세는 김일성이라는 것, 즉 한민통에 지휘체계 이원화가 있었으므로 감투만 쓰고 실세가 아니었던 자신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김대중은 한민통 얼굴마담이었을 뿐 중요한 지령은 북한에서 왔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 군대에도 지휘체계 이원화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였는가?

광주청문회 때 5.18사기꾼들은 광주사태 진압작전에 지휘체계 이원화가 있었다는 주장에 목을 매달았다. 그런 주장의 근거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5.18논리는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으며, 김대중 정권에서도 노무현 정권에서도 그 주장의 근거를 찾아내지 못하였기에 이제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그들을 5.18무장단체라 부르든 5.18광주시민군이라 부르든 대다수의 시민군은 전두환이 누군지 전혀 모른채 광주시청 직원이려니 여기고 있었다 (http://cafe.daum.net/issue21/3Fdk/2692 ). 그러면 광주사태 유언비어가 천지를 진동하던 때에 서울의 학생들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가? 아니다. 당시 유언비어는 전두환 장군이 공수부대 대장인 것처럼 말했다. 2007년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전장군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던 것처럼 시청자들이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유는 본래 그런 유언비어가 5.18 논리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전장군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던 것처럼 퍼졌던 1980년의 유언비어는 무엇을 말하였는가? 그것은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직접 지휘한 살인마였다는 주장이었다. 5.18사기꾼들은 1988~89년의 광주청문회에도 전두환이 살인마라는 주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나, 광주청문회에도 전장군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다고 우길 수는 없었다. 계속 그렇게 우기다가는 5.18사기꾼들의 거짓말이 금방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말을 바꾸어 "지휘체계 이원화"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5.18사기꾼들이 광주청문회 때 갑자기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5.18측 주장이 본래 허위사실 유포로 출발한 것임을 반증한다.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지휘체계 이원화를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박찬종 의원은 "지휘체계 이원화"라는 용어에 대한 꼼수 정의를 내린다: "지휘권 지휘권 해서, 의원들이 증인에게 물은 것이 별개의 표 나는 지위소를 설치해서 이원화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증인의 지휘권은 계엄을 물계엄이라고 일부 장군출신들은 얘기를 합디다만, 사령관께서도 당시에 증인은 사령관으로써 그러한 물렁물렁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바로 지휘체계 이원화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군생활을 통해서 그와 같이 생활을 안했습니다. 누구한테 지휘권을 침해당하거나, 저의 주어진 임무를 누구에게도 침해 안 당했습니다"라는 소준열 장군의 이 시원스런 말 한마디로 박찬종 의원의 꼼수 논리 말문이 막혔다.



역시 같은 날 청문회인 위 동영상에서 우리는 이인제 의원이 그의 무식을 용감하게 드러냄으로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었음을 본다. MBC는 1988년에도 사기치며 국민을 우롱했다. 이인용 기자의 나레이션 "이희성씨는 또 80년 5월 20일 광주 신역앞에서의 집단 발포 사실" 등을 들으면 시청자들은 5월 20일 광주 신역앞에서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있었는가? 광주 신역에서의 사망자는 한 명이었으며, 5월 21일 새벽에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5.18불순세력이 폭동 선동을 목적으로 자행한 사건이었음에도 이인용 기자는 아무런 사실 확인 없이 엄청난 거짓 보도를 하였던 것이다.

그때 이인제 의원은 "한 두 사람 죽인 것도 아니고 집단으로 발포해서 집단으로 사망이 됐는데, 그것이 보고계통으로 보고가 안 될 수 있습니까. 사전에 보고는 급하니까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증인은 보고를 못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세상에 대낮에 말이죠. 수많은 사람을 집단발포해서 죽였는데, 그것이 계엄사령관에게 보고가 안됐다면 이거 누가 믿겠습니까. 다른 곳으로 보고하는 데가 있으니까 보고가 안 올라온 거예요." 등의 발언으로 이희성 장군을 심문하면서 청문회 스타가 되어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도대체 5월 20일 광주 신역앞에서의 집단 발포 사실이 있었는가? 오히려 그런 허위사실 주장을 한 5.18측이 청문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이인제 의원은 이희성 장군에게 호통치는 과오를 범하였던 것이다.

이인용 기자는 정동호 의원의 심문에 대한 소준열 장군의 증언을 이어 보도하면서 "소준열씨는 5월 25일 오후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했을 때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강경파들이 도청을 장악해 대화가 벽에 부딪혀 불가피한 경우 작전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무력 진압의 필요성을 보고한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보도하는바, 아래의 5월 25일자 서울신문 기사는 최규하 대통령이 그날 광주를 방문하여 시민들에게 "이성 되찾아 대화로 수습하자"고 호소방송하심을 보여준다. 사진에서 최 대통령이 귀경길에 오르면서 만나신 군관계관이 바로 소준열 장군이다.



이어 "청문회 이모 저모"란 제목의 보도에서 김형민 기자는 소준열 장군의 시원스런 증언을 이렇게 요약 증언한다: "소준열씨는 80년 5월 22일 갑자기 지휘권을 인계받은 후 5월 27일 새벽 최종 작전을 감행하기 까지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못 박고 그러나 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작전목표를 일반 전투에서의 전과개념과는 역으로 설정해 특공요원들에게 애소하는 등 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980년의 유언비어처럼 전두환 장군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던 것도 아니며, 1988년 광주청문회 때의 5.18측의 억지주장처럼 지휘체계에 이원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5.18측은 전두환이 살인마라는 주장을 해왔던 것이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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