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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시민군 장갑차 운전병 정체성에 관한 의문
 




    7월 24일(2007년) 노무현 독재정권의 군 과거사위는 <특히 문서에는 '전(全) 각하(閣下:전두환):초병에 대해 난동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명기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자위권 발동을 주장했음을 분명히 했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손으로 메모한 종이쪽지에 전두환이란 글자가 있었는가?  군과거사위는 이제 이름까지 편집하여 끼어넣기를 하는가?  이 문건에서 군 과거사위가 원문 그대로 인용한 문구는 "초병에 대해 난동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이다.  군 과거사위는 진실을 감추고 한가지를 부풀리기에 우리는 군 과거사위가 그 문건에서 초병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메모는 21일 작성되었으며, 19일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정웅 소장의 물음에 무엇이 답변이었을지를 여러 장성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는 의견 교환이었다.  이 문건에서 초병은 공수부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5월 19일 광주기독방송에서 경계근무 중 폭도들에게 총을 빼앗겼던 한 초병(광주향토사단 96연대 소속)을 지칭한다.

   19일 광주사태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2군사령부 진종채 장군은 작전참모 김준봉 장군을 대동하고 사태 파악차 광주 전교사로 갔다. 사령관 실에 윤흥정 장군과 함께 셋이 앉아서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31사(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 장군으로부터 윤사령관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내용은 “지금 난동중인 학생들이 MBC방송국으로 몰려와 경계병의 총을 뺏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윤장군은 “아 여보시오 나보고 어떻게 하오리까 하면 내가 뭐라고 할수 있단 말이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그 사건 장소는 광주기독방송이었다.  폭도들이 MBC방송국에 방화를 시도했으나, 초병 총을 빼앗아간 사건은 광주기독방송에서 있었는데, 정웅 소장은 이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요약하여 “지금 난동중인 학생들이 MBC방송국으로 몰려와 경계병의 총을 뺏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광주지역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사단장 정웅 소장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를 윤장군에게 물으니 이것이 장군들 사이에 화제거리가 되고 도마 위에 올랐다.

   5월 21일 서울에서 광주사태를 걱정하는 장성들이 모여 좌담회를 가졌을 때 정웅 소장의 우유부단함이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었으며, 초병이 난동자들에게 총을 빼앗겼을 때 군은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한마디씩 의견을 주고 받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군인복무규율"을 언급한 것을 가지고 군 과거사위가 마치 중죄나 되는 것처럼 언론에 터뜨리면, 난동자들이 총을 빼앗을 때 초병은 난동자들에게 총을 바치라고 말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리고, 좌담회 메모 쪽지를 군 과거사위가 지들 멋대로 편집하여 인용하면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자위권 발동을 주장했다고 억지 주장할 때 여기에는 군 과거사위가 광주시민들로 하여금 사기꾼들로 보여지게 하는 역사 논리가 있다.  광주사태 초기에 광주시민들이 전국에 퍼뜨린 소문은 "전두환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고 공수부대에 명령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국민이 그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였던 여론몰이가 5.18재판의 이유였다.  따라서, 그 소문의 사실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광주시민은 후대에 사기꾼들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전두환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고 공수부대에 명령내렸다"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이 민주화운동인가 아니면 명예훼손인가?  또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려 유혈폭동을 일으켜 양편에서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하는 것이 민주화운동인가 아니면 폭동인가?  만약 당시 광주시민이 전국에 퍼뜨린 소문이 한낱 유언비어로 역사에 기록되면 한 인격에 수십년간 살인마 누명을 씌워왔던 자들의 소행은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의 동영상에서 보는 시민군 장갑차가 던지는 수수깨끼가 있다.  5월 21일 시민군 장갑차가 군인들을 깔아죽이고 있었을 때 군인들은 어떻게 대처하여야 했는가 하는 물음도 있거니와 어떻게 광주시민군이 창군된 바로 그 날 시민군에 장갑차 부대가 있을 수 있었느냐 하는 의문이 있다.  탱크 운전병은 옆을 볼 수 없으므로 한국군 전차병이 작전중 가끔 사람을 압사시켰었기에 군대갔다온 분들은 장갑차 옆에 다가서서는 안된다는 안전수칙을 알고 있다.

   인적이 없는 훈련장소에서도 국군기갑사단 운전병은 종종 안전사고를 내곤 하는데, 시민군 장갑차 운전병들은 광주 도심을 능숙하게 돌아다녔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시민군 장갑차 운전병들은 누구였는가?  그 무수한 시민군 증언들 중에서 아직도 시민군 장갑차 운전병 증언은 발견되지 않는다.  위 동영상 장갑차 운전병에게 신호를 보내는 시민군도 눈여겨볼 점이 있다.

   북한은 10.26사태 직후 한국의 혼란상을 남침 기회로 여기고 전쟁 준비를 했는데, 특수부대에 남한에서 폭동을 일으킬 훈련을 여러 달 시키며 서울말 연습을 시키고, 머리를 장발로 기르게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 당시 대학생들이 미용실에서 컷한 두발과 헤어스타일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피하려 할 장갑차에 어떤 신호를 보내며 그 옆을 지나간다는 것은 이 사람이 장감차 운전병을 알고 있음을 말한다.  심지어 시민군 대장 박남선씨도 당시 시민군 장갑차 운전병들이 누구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우발적 폭동답지 않게 뭔가 질서가 있으며 작전에 따라 시민군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시민군 장갑차 운전병의 정체성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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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http://blog.daum.net/sionvoice/10357845을 클릭하시면 2007년 7월 24일 현재 댓글 105개까지 진행된 광주사태 당시 31사 96연대 한동석 중위의 명확하고도 생생한 518 증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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