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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의 귀국인사말 비교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의 귀국 인사말이 담긴 위의 다큐멘터리 오디오 잘 들려요? 김구 선생이 "조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나레이터의 말이 끝나고 7초간 베토벤의 교향곡9번이 연주되었다가 KBS의 역사왜곡 드라마 서울1945(31부 마지막 장면)에서 동우와 최운혁이 대화하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김구 선생의 환국이 늦어진 책임을 이승만 박사에게 돌리는 것으로 보아 KBS의 PD는 최운혁이 여운형 부하역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치매 환자인가 보아요. 건준은 임정을 인정하지 않으며 환국을 불허한다는 것이 여운형의 건준이 결정한 방침이었거든요. .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김구 선생의 귀국이 이승만 박사보다도 늦어진 것을 미군정 탓으로 돌릴 때, 그리고 서울1945에서 최운혁이 이승만 박사가 하지 중장에게 청을 놓지 않았음을 책망하는 말을 할 때 이것은 스스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이다. 해방 당시에는 북한도 본국령이었는데, 만약 임정이 팔로군 조선의용군처럼 북한으로 귀국하였다면 그것은 전혀 미군정에서 간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군정이 일본군 무장 해제를 시켰기에 임정은 조기 귀국할 수 있었다. 9월 9일 총독부 일장기를 내리고, 총독부 마당에 텐트를 쳐서 숙소를 정한 다음, 20일에 연합국 환영대회에서 한국인에게 인사를 한 다음 21일부터 출발한 미군정이 10월부터 일본군 무장 해제를 시작하였기에 11월에 임정이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미군정이 여운형의 치안대를 불법화해 주었기 때문에 신변 안전이 보장되어 귀국할 수 있었다.

8월 15일부터 연이어 김구 선생은 세가지 슬픈 소식을 들었다. 첫째는 조국 해방 소식이었다. 광복군OSS와 미해병대의 연합작전을 며칠 남기고 일본 천황이 너무 일찍 항복 선언하는 바람에 광복군이 참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둘째로, 슬픈 소식은 러시아군이 압록강을 건너 계속 남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반도 전체가 러시아군 군화에 짓밣힐지 모르던 상화에서 섣불리 귀국을 결정할 수 없었다. 셋째는, 건준이란 듣도 보지도 못한 단체로부터 귀국 금지령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조국이 해방되자마자 동포로부터, 여운형과 박헌형의 건준으로부터 임정이 귀국 금지령을 통보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섣불리 귀국했다가는 건준의 치안대와 임정간에 전투가 벌어질 참이었다.

최운혁의 대사를 보면 드라마 작가는 중일전쟁 초기에 상해가 일본군에 점령당하여 국민당 정부와 더불어 상해임정이 중경으로 피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하다. 건준은 모택동의 공산당 편이었으므로 국민당 정부의 우방 임정을 적국으로 간주하고 귀국을 막았다. 드라마 작가가 여운형의 좌우합작을 부각시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만약 여운형에게 진정으로 좌우합작의 뜻이 있었다면 건준을 조정하여 임정의 귀국을 금지시켰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승만 박사와 공산당이 원수지간이었던 것처럼 강조하는데, 1945년의 시점에는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이승만 박사의 첫 귀국인사말도 "모든 정당과 당파가 다 협동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승만 박사를 제일 먼저 찾아와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초대하였던 이들 역시 여운형 등 공산당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여운형 일파가 김구 선생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처럼 왜곡되었지만, 실제로는 김구 선생과 여운형 사이가 어색하였다. 여운형 편에서 임정 귀국 금지령을 내렸던 까닭이었다.

이승만과 김구 위의 오디오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최운혁이 "이박사님께서 임정요권들의 환국을 모르셨다는 말은 하지 말라"라는 대사를 듣는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는 김구 선생의 환국 직후 김구 선생을 중앙에 모시고 이승만 박사와 하지 군정사령관이 함께 서있지 아니하였던가. 일본에서는 맥아더 군정사령관이 중앙에 서있고 일본 천황은 옆에서 신하처럼 서있는 모습이 방영되던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군정사령관이 상석을 김구 선생에게 양보하였다. 어떻게 그 이상의 예우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환국 전에 임정이 미군정과 연락을 자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중경에 피난 중이었던 임정은 일본의 항복 후에도 석달간 상해로 복귀하지 못하였다. 먼저 일본군이 철수한 후에야 상해로 복귀할 수 있었으니 그 날이 11월 5일이었다. 그리고, 러시아군이 만주를 점령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었던 때 동포의 안전 귀국을 돕기 위해서 미군정의 도움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당시, 팔로군 조선의용군 등 여러 무장단체들이 서로 자기네가 건국하겠다고 하였으므로 미군정에서는 무장 해제를 하고 귀국할 것을 요청하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반입된 무기들이 훗날 요인 암살에 사용된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미군정이 무장단체들에 무장 해제를 요구하고 귀국할 것을 요청한 조치는 합리적이었다.)

실은 일본 해방 직후에 김구 선생이 광복군 모병을 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42년에 창군된 광복군은 병력수 100명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사실 임정의 빠듯한 살림으로는 그것도 벅찼다. 그럼에도 일본 항복 직후 병력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팔로군 조선인의용군 역시 일본 항복 후에 병력 수가 급증하였다. 조금은 기이한 이 일은 김구 선생은 개선 장군으로 입성하는 환국을 원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미군정은 군대를 해체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라고 하였기에 동포의 귀국 방법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였던 듯하다.

최운혁이 미군정이 이승만 박사 환영은 해주었으면서 김구 선생은 환영은 안해 주었다는 말 또한 사실을 거꾸로 말한 것이다. 어떻게 10월 21일 출범한 군정이 10월 16일 귀국한 분을 환영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10월 20일 연합국 환영대회와 더불어 미군정은 공식 출범한다. 그런데, 환영대회는 한국인이 연합국에 베풀어주는 것이지, 연합국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미국 한 나라에 대하여 그 명칭이 연합국이었던가?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지 중장이 이승만 박사를 소개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국군 첫 창군요원은 이승만 박사의 땀의 결실로 창군된 광복군OSS였다. OSS는 미국에서 이승만 박사가 처음으로 미 국무성과 접촉하여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알리고 일본과의 전투에 우리 병력을 투입하여 미군과 합동작전을 펼침으로 정당한 독립을 쟁취하고자 착안한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로 미국에 있던 교포 청년들을 선발하여 훈련을 시켰는데 너무나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되자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알게 된 미군은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하고 이승만 박사는 이 사실을 임정에 알려 광복군 중에서 우수한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OSS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예상보다 빠른 일본의 항복으로 광복군OSS가 참전할 기회를 놓쳐버렸으나, 실전을 위한 군사훈련을 미해병과 합동으로 받았으므로 미군환영대회 행사에서나마 연합국 예우를 받은 것이며, 따라서 창군의 장본인인 이승만 박사를 인사시켜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미군정이 이승만 박사 환영식을 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국민이 연합국 환영행사를 베풀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이 패전국으로서 미군을 환영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가 승전국의 예우를 받은 것이었다. 비록 광복군OSS가 참전의 기회는 놓쳤지만, 이승만 박사의 창군 노력에 감사하는 미 국무성의 뜻을 하지 중장이 우리 국민에 전해준 것이었다.

아마도 드라마 서울1945 작가는 러시아군은 해방군으로 미군정은 점령군으로 비쳐지게 하려는 야심이 대단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1946년 미국이 여운형을 지지하고 이승만을 멀리하는 장면에서 아마도 작가는 당황하였으리라. 그런데, 그 이유는 이승만 박사의 귀국인사말이 설명해 준다. 1945년 10월 16일 이승만 박사의 귀국 인사말 "우리 조선이 완전 무결한 독립을 차지하는 것이 나의 첫번째 소원입니다"와 11월 23일 김구 선생의 귀국 인사말 "여러분과 함께 독립 완성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이에는 가히 민족의 운명을 바꿀 만한 의미의 차이가 있다.

이승만 박사가 "완전 무결한 독립"을 말할 때 그것은 정통성 있는 국가가 건국되기를 바라는 바램이었다. 이승만 외에 다른 지도자들은 모두 정통성을 무시하였으며, 따라서 독립 무효화를 독립운동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왜 미국이 좀 더 일찍 우리나라를 도울 수 없었는가? 그것은 외국인의 눈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중국 속국이었다가 일본 식민지가 된 나라로 알려진 나라, 그 어느 나라로부터도 국가 승인을 받지 못했던 나라가 나라였다는 증거가 없었다. 혹자는 조선인이 인정하는 조선이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드라마 서울1945 작가는 좌익은 "우리 민족의 힘에 의한 독립"을 쟁취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주장을 하려고 무척 애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독립 무효화로 가고 있었다. 만약 조선왕조가 정통성 있는 정부였다는 증언을 아무도 안해 줄 때는 조선인 스스로 해주어야 하는데, 여운형부터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여운형의 건준은 조선총독부 엔또 총감이 앵정권을 여운형에게 이양해 주었으니 여운형이 건국 권한을 일본에게서 부여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였다. 만일 조선왕조의 독립을 위한 독립운도이었다면 어째서 조선왕조를 부인하는가? 이 경우 미국에서 국가승인을 해 줄 요건이 성립되지 못한다.

러시아군정의 의도는 만약 미국의 감시 때문에 한반도를 자국 영토로 병탄하지 못하면 최소한 소련의 위성국으로 붙잡아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의도는 정통성 있는 국가가 건설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친미국가나 반공국가 건설은 전혀 미군정의 의도가 아니었다. 왜 정통성 있는 정부 수립을 도와야 했던가? 그래야 미국도 국가승인을 해 줄 수 있어서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정권의 정통성은 어디서 오는가?

정통성에는 세가지 요건이 있다. 첫째로, 만주국 부의 황제의 경우처럼 선천적 정통성이 있다. 부의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족으로서 만주국 군주로서의 선천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로, 신민이 지지하는 후천적 정통성이 있다. 무장 한족으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던 만주족이 1931년에 독립운동을 하여 1932년 건국을 하고 부의 황제를 군주로서 모시며 충성을 바쳤다. 이성계의 경우 고려의 반역 장수였으나, 그가 건국한 나라를 백성이 지지하였기에 후천적 정통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번째 정통성 즉 외부로부터 오는 정통성도 몹시 중요하다. 대한제국은 외국으로부터 국가 승인을 받아두는 일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으며, 빼앗긴 후에 되찾을 길이 없었다. 1932년에 건국된 만주국은 온전한 독립국이었음에도 독립국이 아니라고 우기는 이들은 만주국이 미국으로부터는 국가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여운형이 세우려는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국가승인을 받을 수 있는 나라였던가?

여운형이 일본으로부터 구두로 행정권 이양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군주가 되려 하였을 때에 그것은 선천적 정통성 요건이 되지 못한다. 만약 조선왕조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미국이 원하는 정통성의 요건은 민주적 방법에 의하여 정권이 수립되는 것이었다. 즉, 선거에 의해 후천적 정통성을 확립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운형, 박헌영은 물론 김구 선생까지도 선거에 의한 정권 창출을 거부하고 서로 자기가 군주가 되며, 자기 당이 집권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조선이 국제사회가 국가승인을 해 줄 수 있는 완전 무결한 독립국이 되는 방법은 민주적 선거에 의한 후천적 정통성 확립이었다.

남북한이 분단된 것은 북한이 유엔선거감시위원단의 입국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일단 유엔선거감시위원단의 선거관리 하에,첫번째 민주적 선거가 치루어져 정권이 창출된 후에는 그것을 근거로 미국과 미국 우방 국가들이 국가 승인을 해 줄 수 있었으며, 이렇게 내부적 외부적 정통성이 겸비된 후에는 북한군이 남침하여도 유엔군이 참전하여 우리 민족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군주가 된 김일성 왕조가 지배하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경우 대한민국의 정통성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사실, 우리 민족의 모든 분열이나 분단의 책임은 여운형, 박헌영, 김구 선생 등의 정통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선거를 거부하고, 목소리 크고 잔꾀 부리는 놈이 정권을 차지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서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동지가 되었다가 가차없이 버리는 일을 해왔다. 오늘 노무현의 정치에서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하는가? 일제 시대의 그들의 독립운동 정신은 휼륭하였다. 그러나, 해방 조국에서 독립 무효화의 노선을 채택하였던 그들의 무지는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무지를 미화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기에 안간힘을 쓰는 KBS 드라마 서을1945는 참으로 위험한 드라마이다.


BBC News


KBS가 지금 어떻게 시청자를 기만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그 한 예를 최고의 고화질 동영상과 원음 음질로 보며 듣고 싶으신 분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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