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괴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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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사태와 촛불문화제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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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사태라 일컬어지는 촛불문화제의 유래

    지금 좌익이 쓰는 촛불문화제라는 명칭은 개념 성립이 불가능한 명칭이다.  본래 우리나라에는 문화라는 단어가 없었으며, 영어의 culture 가 한자 문화권에서 문화(文化)로 번역되어 사용된 기간은 한세기를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문화라는 단어가 남발되고 있다.  세상에 촛불 문화라는 것이 있는가?  한국 문화는 있어도 촛불 문화는 없다.  그리고 문화제는 또 무엇인가?  지금 빨갱이들은 촛불축제라는 의미로 촛불문화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바, 문화라는 단어를 너무 남발하는 것은 문화의 의미를 모르거나 상실하는 것이다.  

   일례로, 분명 좌익은 처음에는 추모의 상징적 의미를 주한미군으로부터 빌려왔었다.  그런데, 몇달간, 그리고 몇년간 날마다 광화문에서 촛불추모식을 열다보니 처음에는 효순이와 미선이 추모의 뜻으로 촛불을 들었었다는 사실조차 이제는 까맣게 망각하고, 촛불 추모가 금년에는 촛불 축제로 명칭마저 바뀌어 버렸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촛불추모식은 2002년 6월 18일 오후 8시에 미2사단 44공병대 처음 시작하였다. 이날 촛불추모식 때 미군은 5만불 성금을 마련하여 효순이와 미선이 추모비를 제작한바, 오늘날 좌익이 6월 13일 반미시위 때마다 이용하는 추모비가 바로 이날 촛불추모식을 거행한 미군 장병들의 성금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좌익이 언제 한푼이라도 효순이와 미선이 유가족을 위해 성금을 낸 적이 있었던가?  미군은 4억원의 보상금 외에도 여러 차례 별도의 위로금을 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와서 농사일을 거두어 준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행동으로 말하는 추모의 의미이다.  그런데, 여중생 범대위 등 좌익단체 사람들은 반미시위 때만 효순이와 미선이 이름 팔아먹고나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효순이와 미선이 부모도 이제는 더 이상 좌익에게 이용당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싫컨 이용해 먹은 다음 빨갱이들이 촛불의 상징적 의미를 어떻게 변질시켰는지 보라.   빨갱이들이 촛불문화제를 준비할 때 김대중이 "5.18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화염병과 쇠파이푸, 돌을 다시 집어던저라"고 선동하였다. (
cafe.daum.net/issue21/3Fdk/2785
)



   그리고, 여기 김대중이 시키는 대로 쇠파이프로 경찰을 내리치는 폭도들을 보라.


   김대중이 시키는 대로 벽돌을 들고 나와 순경 얼굴에 강타하는 폭도도 있으며


   쇠망치를 들고 시위하다가 쇠망치로 경찰을 때려 두개골을 함몰시키는 폭도도 있다.


   만약 김대중 일당에게 문화라는 것이 있다면 시위 문화인데, 그러한 폭력시위는 금년 2008년에 갑자기 시작되었는가?  아니다.  아니다 광우병 정국 때 촛불문화제라는 미명으로 김대중이 선동하는 시위는 그 뿌리가 해방정국이었던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산당 출신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전혀 배운 적이 없었으며, 시위 선동이 그가 제대로 할 줄 아는 전부이다.  지금 좌익이 선동하는 촛불집회 참석자 수가 많은 것도 시민군 조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이 세워지고 준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어록과 사전에서 과격시위는 민주주의와 동일시된다.  1970년대 초에는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으로 청년들을 매수하여 당시 신민당 당수였던 "유진산 물러가라"를 외치게 하였다.  1972년에는 군부 내 송죽회(松竹會)와 군부 내 좌익들을 동원하여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려 하였으며 (cafe.daum.net/518cafe/IEup/37), 한민통 두목이었던 1973~74년에는 단원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을 맘살하려 하였다.

   인혁당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월맹은 인민혁명당을 동원하는 민중봉기를 일으켜 1975년 3월에 자유월남을 패망시켰는데, 그 직후 김대중이 한국에서도 월남과 똑같은 민중봉기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인민혁명당(인혁당)을 동원하는 연방제 통일이었다.  인혁당 논리를 그대로 적용시켜 일으킨 것이 광주사태였으며, 제2의 광주사태라 할 수 있는 작금의 광우병 사태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광주사태를 겪지 않았으며, 왜곡된 교육을 받아온 이들 중에  위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완전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대중은 김영상씨에게 밀려 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었으며, 신민당 입당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광주시민들이 김영삼씨를 위한 자선봉사를 하기 위해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직선제 개헌을 하시려는 쪽은 최규하 대통령이셨으며, 김대중은 직선제 개헌 반대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선동했었다.

   만약 10여년이 지난후 좌익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인민재판을 하면서 주장하기를 국민은 미국 쇠고기를 먹고 싶어하였는데, 이 (전) 대통령이 가로막았다며 죄를 묻는다면 실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518사기꾼들이 그간 어찌나 사기쳐 욌는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1980년 5월 상반기 시위는 주로 서울에서 있었으며, 그 구호는 "최규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직선제) 개헌 반대"였다.  광주에서는 최규하 대통령께서 추진하셨던 직선제 개헌 반대의 의미로 "최돼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쳤었다.

   김대중이 1980년 3월 주요 대학 학생회장 선거에 개입했었기에 당시 선출된 총학생회장들 중에 비민주적 방법으로 선출된 이들이 있었다.  김대중의 자금과 조직 동원으로 비민주적 방법으로 선출된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하였을 리가 있었겠는가?  아니다.  김대중 홍위병들은 4월 김대중의 살생부에 따라 "어용교수"(김대중 지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교수"를 퇴진시켰으며, 전국에서 동시에 똑같은 방법으로 학내 시위가 있었는데, 총장실을 점거한 후 책상과 걸상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비운동권 교수 퇴진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김영삼씨에게 밀려 도저히 직선제로는 대선 후보가 될 가망이 엎자 김대중은 선거의 판을 뒤짚어 엎고 스스로 대통령이 될 목적으로 전국적 민중봉기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인바, 작금의 광우병 괴담 폭동과 그 논리와 전개 방식이 동일하다.  1980년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국적 민중봉기는 불발탄이 되어 광주에서만 일어났었던바, 지금 김대중은 그 본질은 전국적 민중봉기인 폭동을 "촛불문화제"로 명칭만 바꾸어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 광주사태 배후에 김대중이 있었듯이 2008년 광우사태 배후에도 김대중이 있다.

   사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위한 주한미군의 숭고한 촛불추모식을 노무현의 선거운동원 김기보 기자가 모방하여 반미시위로 그 상징적 의미를 변질시킨 것은 그리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2002년 11월 하순 오마이뉴스의 김기보 기자는 앙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자"는 내용의 글들을 올린 다음 오마이뉴스에 "네티즌 앙마의 호소"라며 수차례 기사를 내보내는 자작극을 하였다.  그런 사기극에 속는 이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반미촛불시위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그때부터 촛불은 시위의 상징성을 띠게 되었다.

  
   An activist for Roh Moo Hyun's presidential campagin in 2002 published articles for anti-American rallies on his website in the name of Angma, then promoted Angma's articles using his position as a reporter for OhMyNews, a Korean Internet Newspaper.  On this photo we see Mr. Kim Ki-Bo became very popular as he attracted a huge crowd to his anti-American rallies (the Korean leftists prefered to call it, "The Ceremonies of Candlelight Culture").  Since then, Roh Moo Hyun often called "Little KIm Dae Jung" and candlelight became a symbol for political rallies.
 
   그러나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이 Little KIm Dae Jung 의 선거운동원의 불명예스러운 촛불시위를 모방하는 것이 과연 명예스러운 일인가?  이것이 김대중과 그의 일당이 "촛불문화제"란 미명 하의 광우병 폭동의 배후 세력인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다.  But, is it honorable that Kim Dae Jung, the Noble Peace Prize winner, is immitating the dishonorable old way of anti-American candlelight rallies agitated by an election activist for Little KIm Dae Jung?  This is the question one has to ask as Kim and his men are the force behind the current "Mad-Cow Riot," which they prefer to call "the Festival of the Candlelight Culture."


   http://study21.org/library/b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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