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자서전 영상 오디오북


제1장 제2화 '진해 경화동의 추억'



   진해 육군사관학교로 발령이 났을 때 아버지는 무척 의욕에 차 있었다. 더구나 정규 4년제 과정을 새로 도입해 마치 군이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생기가 느껴지던 육사에서 참모장직을 맡게 된 것을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발령이 나기 무섭게 진해로 가신 아버지는 그해 여름 그곳에 집을 마련해 놓고 가족들을 이사 오도록 하셨다 푸른 남해바다의 출렁이는 물결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바다향기에 취하면서 우리 가족은 남해안을 따라 진해로 가는 여정 동안만은 오랜만에 전시의 우울함을 잊을 수 있었다. 진해에 도착했을 때 참모장 관사는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진해 변두리 경화동에 적산가옥 한 채를 얻어 거처로 정했다. 소나무가 울창한 야트막한 산 아래 정물처럼 자리 잡고 있던, 담장은 없고 펼쳐진 밭과 길 저편에서 문득 시작되는 바다가 그대로 정원이 되어 있는 작은 단층 목조 집, 그 경화동 집은 내가 평생의 반려자가 된 그이를 만난 추억의 장소다. 그이는 당시 육군사관학교 2학년 생도였다. 아버지가 진해 육군사관학교 살림을 맡은 신임 참모장으로 부임하신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은 어느 화창한 가을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31페이지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30쪽

   그 청년의 멋진 사관학교 제복 때문이었을까. 유난히 좌중을 압도하는 패기가 느껴져 유심히 그 모습을 눈여겨 보게 되었었다. 그런데 너무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 청명한 가을날, 불쑥 경화동 집으로 아버지를 찾아온 많은 청년들 중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참모장님 계시냐고 묻던 그 가운데 청년, 그는 바로 1년 전 동창회에서 보았던 바로 그 육사생도였다. ‘전두환 (全斗煥)’이라는 이름의 그 생도와 친구들 생도들이 사택으로 찾아온다는 일은 전혀 생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일요일이라 외출이 허락된 날이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용돈도 없어 난감해하던 중 새로 부임하신 참모장님을 찾아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람은 바로 전두환 생도였다고 한다. (이순자 자서전 32 페이지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32쪽

   어려서부터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에 익숙해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전 생도는 성격이 자상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남자형제 없이 누나들 사이에서 자라온 어린 막내 창석에겐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자매들에게도 오래지 않아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존재가 되어갔다. 타고난 입담으로 어릴 때 시골에서 수박서리를 하던 때의 무용담이나 온갖 귀신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육사 내무반 생활의 일화 같은 것을 들려줄 때면 이야기책 보다도 재미있었다. 자신도 친구들로부터 얻어들은 영화이야기도 마치 실제로 금방 보고 온 사람같이 실감나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럴 때는 그야말로 어머니를 포함한 온 식구가 넋을 잃고 그이의 재담에 귀를 기울였다. (이순자 자서전 34~35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34~35쪽

이순자 여사 경기여고 시절

   3년 전 중학교 입시를 위해 치른 국가고사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나로서는 분명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실망 앞에서 난 옛 실력을 되찾고 싶다는, 침착하지만 도전적인 심정이 됐다. 나는 다시 시청 앞의 그 학원에 등록했다. 영어, 수학 같은 주요과목을 새벽과 방과 후에 각각 두 시간씩 보충하는 집요한 일과가 시작됐다. 전차도 아직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 가로등도 없어 칠흑같이 어둡던 새벽에 청파동 집을 나와 학원이 있던 시청 앞까지 걸어갈 때면 때로는 내가 걷는 내 말자국소리예 스스로 놀라 소스라치기도 했었다. 새벽 학원수업이 끝나면 성공회 안에 있던 크고 아름다운 회화나무 밑 바위 위에 앉아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으며 새벽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새벽부터 방과 후까지 하루종일 공부와 씨름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튼튼한 기초를 바탕으로 열심히 공부하던 동급생들 틈에서 내 성적은 조바심을 내며 종종걸음을 치던 내 마음과 달리 큰 만족을 주지 않았다. 안타깝던 여고시절 더 이상 학교를 옮기지 않으며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만큼이나 성적 때문에 애를 태우던 시절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39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38~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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