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어둠이 가장 짙을 때가 새벽이 가깝고, 역사의 여명이 밝아오는 때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 정보국의 모든 5·18문건을 분석하여 북한의 5·18 문건 및 한국의 5·18 기록물과 비교하며 『김일성 교시와 5·18』을 집필하고 있는 김대령 박사입니다.
지난 5월 17일 강기정 광주시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윤 대통령은 5.18영령들 앞에서 헌법 전문수록을 선언하라”고 촉구하자, 22일의 인사청문회에서 박민식 보훈처장 후보가 “5·18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도록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공약하고, 8월에 하태경, 성일종, 이학영 의원이 5·18 헌법수록 발의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5·18 세력이 자꾸 공룡처럼 커지는 때가 길고 어두운 터넬을 지나는 시기입니다. 공룡처럼 커진 5·18의 거짓의 세력 앞에서 우리는 작고 미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싸움의 승리는 항상 수에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이념의 정체성에 대한 첫 경종은 21년 전인 2002년 초겨울부터 시작된 광화문 반미촛불시위였습니다. 그해 6월 13일의 효순이와 미선이의 미군 장갑차 윤화사고를 주한미군철수에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조직한 반미촛불시위는 날로 커졌으며 한총련 등 종북세력은 제야의 종이 울릴 때 백만 명이 모이면 김정일 통일 대통령 원년을 선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전경도 미국도 막을 수 없었던 그 거대한 반미 촛불시위를 누가 막았던가요? 광화문 반미촛불시위는 사기극이라는 것을 밝혀낸 분들이 막았습니다.
오마이뉴스 김기보 기자가 앙마라는 네티즌이 모 신문사 게시판에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벌이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이자’고 호소하는 글을 썼다며 오마이뉴스에 크게 보도한 것을 시작으로 며칠만에 엄청난 인파의 반미촛불시위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를 포함한 소수의 애국시민들이 단합하여 광화문 반미시위는 김기보 기자의 자작극으로 선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즉 김기보 기자가 앙마라는 닉으로 촛불시위 호소문을 쓰면 김기보 기자가 제3자의 글에 감동하여 보도하는 것처럼 크게 보도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네티즌 앙마는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KBS가 보도되자 그 날로 촛불이 꺼졌습니다.
2008년 여름에 일만명의 전경 병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광우반미 촛불시위를 우리가 어떻게 막았던가요? 그때도 마치 광우의 난 같았던 거대한 군중의 촛불시위를 소수의 애국시민들이 팩트 대결로 막았습니다.
광우병 반미촛불시위의 발단은 고(故) 아레사 빈슨씨의 사인(死因)에 대해 미국 보건 당국의 게시물에 대한 MBC PD수첩의 그해 4월 29일자 방송이었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전혀 그녀가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 적이 없었음에도 MBC PD수첩이 고의로 오역한 사실을 저를 포함한 소수의 연구자들이 밝혀내고, MBC PD수첩의 오역이 조선일보에 보도되자 그 날로 촛불이 꺼졌습니다.
5·18역사전쟁은 본질적으로 거짓과 진실의 대결이며, 우리에게는 팩트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팩트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입니다. )
6·25 전쟁 때 침략군이었던 정율성 기념사업을 하는 강기정 광주시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5·18 헌법수록을 촉구하자 주사파 출신 하태경 의원과 남민전 출신 이학영 의원이 5·18 헌법수록 발의하였을 때 우리는 국가 정체성 위기의 경종이 울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지금이 또한 5·18 사기극의 허점이 가장 노출되는 때이며, 5·18의 이념 사기극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작은 물결로써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물결은 5·18사기극으로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큰 물결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25일 5·18 헌법수록과 대한민국의 정체성 세미나 인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