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의 망상적 발언



   정청래가 지난 8일 5·18 묘지에서 눈물 짜고 청승 떨며 말하기를 만약 12·3계엄이 성공했더라면 광주사태 때처럼 이재명과 자기는 시체도 없어진 채로 죽었을 것이라며 내란세력을 척결하겠다고 말한 것은 망상적 발언이었다.


5·18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정청래의 망상적 발언


    준석아, 너가 더불어빨간당의 김건희 여사 특검법 통과를 개혁신당 당론으로 지지하여 주었고, 특검의 칼날이 지금 너의 목을 겨누고 있다. 특검은 윤석열 당선인 시절 5선 국회의원 김영선이 지방선거 공천을 받은 것을 너와 김건희 여사가 공범인 국정농단 사건으로 조작하려 하고 있다.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가 너였기에 오늘 8월 12일 김건희 여사가 남부구치소에 구속된 사건이 바로 너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가 되었구나.

문재학 묘에 참배하는 정청래

    준석아! 정청래가 지난 8월 8일 5·18 묘지에 참배하였기에 오늘 너에게 두가지 질문을 하겠다. 첫번째 질문은 광주 오월 정신으로 정치하겠다며 5·18 묘지에 가서 참배하는 너의 5·18 묘지에서 참배하는 정치적 이유와 특검이 너를 체포하여 수사하게 하려 하며 국회에서 너를 제명하려 하는 정청래가 5·18 묘지에서 참배하는 정치적 이유가 동일한 지를 묻고 싶다. 준석이는 선거 때 애국 보수 표를 가져가는 정치인이다.

5·18 묘지에 헌화하는 이준석

    그런데 만약에 정청래와 준석이가 5·18 묘지에 참배하는 정치적 이유가 동일하다면 준석이가 정청래와 차별화하는 정치 이념이나 정치 노선이 무엇일까? 정청래는 증오의 정치를 하고 있다. 정청래가 광주영령들의 뜻대로 정적을 척결하겠다고 5·18 묘지 방명록에서 선언하였다. 정청래는 자신의 정적을 내란세력으로 규정하는데, 정청래는 아직도 내란세력을 식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구나.

5.18 묘지에 헌화하는 이준석

    내란범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전직 대통령과 영부인에 대한 대우 방식이다. 전두환 대통령처럼 합헌적으로 정권을 승계한 대통령들은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영부인에게 깍듯이 예우한다. 그런데 내란범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전직 대통령과 영부인을 학대한다는 점이다. 증오의 정치를 하는 내란범들은 전직 대통령을, 심지어 전직 대통령 영부인까지 악마화함으로써 자기네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좌파는 정적을 공격하고 제거하는 방법으로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를 사용한다. 김건희 여사는 술도 못 마시는 분이다. 그런데 술도 못 마시는 분을 그간 좌파 사기꾼들이 얼마나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로 괴롭혔었니? 물론 가짜뉴스로 남을 괴롭히는 못된 근성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러나 5·18 묘지에 참배하는 자들이 가짜뉴스로 마녀사냥하는 것을 즐길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준석아, 너 보기에도 시민군들이 인민재판하던 방식과 이재명 특검이 특검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지 않니? 지금 특검은 극도의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광주사태 때 시민군들이 시민들을 붙잡아 조사하였을 때 극도의 인권 탄압을 하였기 때문에 여러 명의 시민들이 조사받던 중 사망하였다.

    정수만 씨가 광주 5·18 유족회 회장이 된 사연도 동생 정지영 씨가 사망하였기 때문이었는데 정지영의 사망 경위도 그가 시민군들에게 붙잡혀 손을 뒤로 묶인 채 끌려간 사진이40년 만에 공개되었을 때 밝혀졌다.

5.18 전 유족회 회장 정수만씨 동생 정지영을 납치한 시민군들

    이창성과 나경택 등5·18 취재 사진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은 해남농민 김인태 씨도 시민군들에게 붙잡혀 도청 안으로 끌려간 후 사망한 사실을 보여준다. 해남농민 김인태 씨의 부인 심복례 씨가 남편의 생명을 시민군들에게 빼앗긴 날 광주시 남구 백운동 주민 윤숙자 씨의 남편의 생명도 시민군들이 앗아갔다.

김중식씨를 납치하여 도청 안으로 끌고가는 시민군들

    2021년 5월 15일에 김일성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판매 합법화 판결을 내렸던 좌편향 서울서부지법의 우리법연구회 출신 차은경 판사가 전날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을 미리 발부해 놓고 일찍 퇴근한 후 언론에 영장 심사 중이며 새벽에 발표한 거라고 허위보도한 것은 그 보도를 믿고 그 추운 1월의 겨울에 법원 앞에서 밤을 새며 기다렸던 시민들을 기만하는 행동이었다. 대통령 구속 결정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데 단 몇시간의 영장 심사도 안하고 미리 발부해 놓고 일찍 퇴근한 후 직원이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아무런 이유 없는 대통령 구속 결정을 발표한 것에 대하여 시민들이 항의하여야 할 이유가 없었는가?

    날씨가 추우면 누구나 실내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밤새도록 바깥에 서서 차은경 판사의 결정을 시민들로서는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추위에 떨며 항의하는 시민들은 법원 가까이 가고 싶어하였을 때 경찰이 입구를 열어주고 철수하자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은 뒤에서 미는 군중에 계속 앞쪽으로 밀렸다. 이때 JTBC 기자가 들어가서 영상을 하고 좌파 유튜버들이 들어가서 생방송하는 모습이 보이자 유튜버의 정체를 묻던 시민들도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1월 19일의 서부지법 난입사건의 전말이다. 국민이 나라와 대통령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고 분명히 차은경 판사가 시민들을 기만하고 우롱한 행위에 대하여 항의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때 얼떨결에 법원 안에 들어가게 된 시민들에 대해 5년 징역형 등 아주 무거운 중형이 선고되었다.

    준석아, 우리는 금년 1월 19일의 추운 겨울 새벽에 아주 잠깐 있었던 서부지법 난입사건과 광주에서 1980년 5월 21일 이른 아침에 난동자들이 광주지법에 난입한 사건과 비교해 보아야 돼. 왜냐하면 광주지법에 난입했던 난동자들은 5·18유공자로 인정받고 지금껏 각종 보상금을 받으며 특혜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왜 똑같은 법원 난입 사건인데 광주지법에 난입하였던 난동자들은 최고의 민주화운동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 두 사건에는 차이점이 있다. 광주지법에 난입하였던 난동자들은 광주지법 점거에서 끝나지 않고 광주시청과 전남도청과 전남도경찰국에도 난입하여 점거하였다. 그런데 시민군들은 단순히 전남도청에 난입하여 농성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야. 시민군들은 도청공무원들이 출근을 하지 못하게 막았어.

    광주지법 난입사건과 서부지법 난입사건의 차이는 그것뿐만이 아니었어. 미국무부의 5·18문건에 따르면 광주지법 난입에 이어 전남도청에 난입한 시민군들은 도청을 시민들을 납치하여 인민재판으로 처형하는 장소로서 이용하였다는 점이 서부지법 난입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단다.

광주인민재판에 대한 미국 국무부장관 머스키의 발언

    도청에서는 인민재판에 의한 처형이 실시되었어. ‘인민재판에 의한 처형’은 미국무부 5·18보고서에서 시민들이 시민군들에게 납치되어 도청 안으로 끌려간 사건을 묘사할 때 사용된 문구이고 총살형이 아니라 고문치사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 같아.

    준석이는 시민군들이 전남도청 안으로 난입한 후에 5월 24일부터 고문치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이유가 뭐였다고 설명하니? 지금 특검의 칼날이 준석이의 목을 겨냥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는 지금 준석이의 정치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야.

    준석이 너도 보다시피, 이재명 정부의 특검은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특검, 마녀사냥하는 특검이다. 광주해방구에서 시민군들이 주로 하는 활동도 수사였다. 시민군들은 계속 도시를 순찰하며 시민들을 납치하여 도청으로 끌고와서 수사하였다. 그런데 그 수사 방식이 이재명 정부 특검이 수사하는 방식과 아주 비슷했어.

    이재명 정부 특검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처벌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수사를 하며 없는 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대통령과 영부인의 방어권을 빼앗는다. 지금 특검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치소에 가둔 이유는 방어권을 박탈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시민들이 시민군 소굴로 끌려온 순간부터 방어권은 완전히 박탈되었단다.

    준석아, 너는 시민군들이 전 5·18유족회 회장 정수만씨 동생 정지영씨 양손을 뒤로 묶고 도청으로 끌고가는 이 사진에 무엇을 읽니? 정지영씨를 도청 안으로 끌고가서 고문치사로 사망케 한 이 시민군들이 5·18유공자들이요, 광주단체 회원들인 것 맞지? 준석이는 광주사태 가해자들인 시민군들이 자신들의 과오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한 후에 유언비어로 국군에 광주학살 누명을 씌운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오늘 법원의 김건희 여사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단 여덟 자만 써 있다: “증거 인멸 우려 있음.” 이 말은 소명된 범죄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이 영부인을 구속할 사유가 되니? 특검이 증거 인멸 우려가 있으니 구속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말은 특검이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가짜뉴스에는 증거가 있을 수 없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증거를 어떻게 김건희 여사가 인멸할 수 있다는 말이냐?

특검에 출석하는 김건희 여사

    준석아, 너도 큰 잘못을 하였어. 증거가 없으면 특검법을 통과시키지 말았어야 했었어. 마녀사냥하는 가짜뉴스들이 무성하다는 것만으로는 특검을 해야 할 이유가 안된다. 지금 김건희 여사에게 닥친 일이 곧 너에게 닥칠 일이다.

    특검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범죄자로 만들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가 없다. 결국 특검의 최후의 수단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것뿐이다.

    바로 그런 야만적인 수사를 광주지법과 전남도청에 난입한 시민군들이 했었어. 자, 대부분의 경우 시민군들의 목표는 그들이 도청 안으로 끌고온 시민들을 사복 경찰 혹은 경찰 프락치로 엮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가 존재할 수 없었다. 시민군들이 피의자 유죄를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날 특검이 그러하듯이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것뿐이었다.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시민군들이 폭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여러 명의 시민들이 시민군 조사실에서 조사받다가 타박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정청래가 지난 8월 8일 5·18묘지를 찾았을 때 거기에는 정지영과 김인태와 김중식 등 시민군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묘지들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준석이에게 묻고 싶은 두번째 질문이 생기는 거야. 정청래도 준석이 너처럼 광주사태 희생자들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며, 전혀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참배를 하는 것인지 묻구 싶구나!

    5·18묘지에는 또 시민군 총기난사 희생자들이 있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도청구간에서 12명의 시민군들이 사망하였다. 군인들과의 전투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시민군들이 서로 자기 편을 향하여 총기난사하였을 때 시민군 총탄에 맞아 사망한 시민군들이었다. 시민군끼리의 총격전이 끝난 후 도착한 군인들이 시민군 시신을 수습하였기 때문에 누명을 쓰게 되었지만 시민군끼리의 총격전이 끝난 후 도착한 군인들 중 아무도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총을 쏜 군인은 없었다.

    정청래가 윤상원의 묘에 참배하였는데 윤상원은 시민군 M203유탄발사기 오발사고로 사망한 광주사태 주동자였단다. M203유탄발사기는 시민군에게만 있는 무기였어. 5월 24일에 시민군들은 M203유탄발사기를 해남농민 김인태씨를 납치하는데 사용해었다.

헤남농민 김인태씨를 납치하여 도청 안으로 끌고가는 시민군들

    광주무장봉기 주동자 윤상원은 총상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시민군들이 낸 화재로 인한 화상으로 사망하였어. 도청 2층의 소강당처럼 넓은 민원실을 시민군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고, 시민군들 중 누군가 M203유탄발사기로 오발사고를 냈을 때 그 파편들이 윤상원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에 박히며 화재가 났을 때 그 화재로 윤상원이 화상을 입게 되었다.

시민군이 이불에 낸 화재로 화상을 입은 윤상원

    정청래가 또 무명열사 묘를 방문하였는데 지금 마지막 남은 무명열사 묘는 여전히 북한군이라는 의혹이 있는 묘이다. 준석아, 광주시민들이 5월 21일 멀리 목포까지 원정가서 시청과 경찰서 등 목포의 관공서에도 난입하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목포까지 원정가서 목포 관공서에 난입한 난동자들의 정체가 수상하지?

    5월 21일 목포에서도 관공서를 접수하여 해방구를 설치한 시민군 차량들이 그 다음날 날이 어두워진 후에도 도로를 질주하며 차량 퍼레이드를 하다가 시민군 트럭에서 22세가량되는 청년이 떨어져 사망하였다. 그는 아스팔트 도로에 머리가 부딪히는 순간 입은 뇌타박상으로 인한 호흡 및 순환중추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즉시 목포적십자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고발생후 불과 5시간 만인 익일 새벽 1시 15분에 사망하였다. 이 청년은 목포시민도 광주시민도 아니었기에 신원 확인이 안되어 무명열사 묘지에 안치되었다.

    준석아, 이렇듯 정청래가 지난 8월 8일 참배한 무명열사 역시 군인 총에 맞은 희생자가 아니라, 목포에서 점령군 퍼레이드하던 시민군 교통사고 희생자였어. 정청래가 참배하기 20년 전에 북한 대표단이 비 맞으면서 이 자를 참배하였다. 누구의 묘였기에 북한 대표단이 다른 일정을 제쳐두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와서 참배하였던 것일까?

5·18묘지 무명열사 묘에 헌화하는 북한대표단

    목포시민군 교통사고 외에도 무명열사 묘가 생긴 원인은 시민군들이 사망자 이름 표시를 잘못 표시하여 합동장례식 때 관이 뒤바뀌거나 부모들이 타인의 시신을 자기 자녀 시신으로 혼동하였기 때문이었어. 그리고 무명열사 묘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한 소설인지를 입증하는 단적인 증거물이다.

    특검이 아무리 수사해 보아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범죄를 입증할 증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강 작가가 거짓말로 독자들을 기만하였다는 사실의 증거는 명확하다.

    『소년이 온다』 소설의 제2의 주인공 정대는 숭의실업고등학교 1학년 학생 양창근과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김광복 소년을 합성한 인물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정대는 위생병이 시체를 불에 태웠기 때문에 무덤이 존재하지 않는 희생자로 등장한다. 8월 8일에 기자들을 데리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정청래가 "만약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이재명 대통령도, 정청래도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어 어디에서 시신도 찾지 못하고, 아까 봤던 혼령만 모시는 처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한 말은 바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에서 정대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다는 줄거리에서 따온 말이야.

    그런데 나주로 무기를 탈취하러 다니던 시민군들이 낸 교통사고로 사망한 양창근의 시신은 41년 동안 김광복 소년의 무덤에 묻혀 있었어.

    김광복 소년의 사망원인 또한 한강이 소설에서 얼마나 악의적인 거짓말을 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야. 5·18묘지에 묻혀 있는 분들 중 총상 사망자 거의 대부분이 시민군 총에 맞은 분들이야. 김광복 소년이 한강의 소설에서처럼 5월 21일 도청 앞에서 군인의 조준사격으로 사망하였나? 그게 아니쟎아. 김광복 소년은 5월 22일 밤 10시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자기 총 오발사고로 사망하였쟎아.

오발된 자기 총에 맞은 김광복 소년

    양창근이 한강과 정청래의 거짓말처럼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것이 아니라, 똑 같은 체크 남방을 입고 외출하였었기에 양창근의 어머니가 김광복 소년의 시체를 자기 아들 시체로 착각하였기에 5·18묘지에서 김광복의 묘에 양창근 묘비가 세워지고 김광복 소년의 유해는 무명열사 묘에 안장되어 있게 되었던 거란다.

    정청래가 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주인공 문재학의 묘지를 방문하였다. 외신기자 노먼 소프가 찍은 사진으로 판별되는 문재학의 시신 상태는 군인들이 도청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시민군들이 서로를 향하여 한참 총질하였을 때 사망하였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문재학군의 사망경위는 아직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강의 소설에서 동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는 말짱 거짓말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도청 마당에서 두 손 들고 항복하며 걸어오는 동호를 장교가 M16으로 사살하였다. 그러나 노먼 소프 기자의 사진은 문재학의 사망장소가 도경찰국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준석아, 한강의 5·18소설에서 단 하나라도 황당하고 악의적인 거짓말 아닌 것이 있어?

도경찰국 2층 복도에서 사망한 문재학

    준석아, 이 사진이 문재학의 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 시민군 사진이야. 도경찰국에 난입한 난동자들 중에 광주상고 학생들도 있었어. 그리고 난동자들의 도경찰국 난입사건은 금년 1월 19일의 서부지법 난입사건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사건이었단다. 도경찰국 난입사건의 경우 무전기 등 경찰 장비를 훔쳤으며 도경찰국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어. 난동자들이 도경찰국에 난입하여 경찰관 제복과 장비를 도적질하며 점거한 행위야 말로 공권력 파괴행위인데 금년 1월 19일에 애국시민들이 대통령을 구하려는 와중에서 잠깐 발생한 서부지법 난입 사건에 대해서는 아주 무거운 형벌을 내리면서 1980년 5월에 도경찰국에 난입한 난동자들에 대하서는 최고의 유공자 대우를 해주는 이 불공평한 잣대가 준석이는 납득이 되니?

    시민군들에게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신 분들이 묘지에서 정청래가 "광주 영령들의 뜻대로”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광주 영령들이 어떻게 느꼈을까? 시민군들이 가해자인 사건에 대해 국군에 광주학살 누명을 씌우는 것을 시민군 고문 희생자들이 원할까? 하물며 정청래가 광주 영령들의 이름을 팔아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한 것을….

    준석아, 지난 8월 8일 정청래가 시민군 교통사고 희생자, 시민군 총기난사 희생자, 시민군 고문 희생자들의 묘지에서 "만약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이재명 대통령도, 정청래도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어 어디에서 시신도 찾지 못하고, 아까 봤던 혼령만 모시는 처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광주사태 때 희생자가 생긴 이유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시민군들이 천여대의 차량을 탈취하여 무면허 음주 과속운전을 하며 수많은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이었으며, 불순세력이 총기를 다룰 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총기를 분배하여 무수한 총기오발사고를 내었기 때문이며, 시민군들이 시민들을 붙잡아가서 무리한 수사를 하였기 때문이쟎아!

시민군이 낸 교통사고로 사망한 5·18유공자 김오순 아주머니

    그리고 비록 지금 특검이 1980년 5월의 시민군들처럼 인권을 탄압하며 없는 죄를 만드는 수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0년 5월의 광주처럼 무장시민군들이 시민군을 영장 없이 체포하여 끌고가는 무법천지 상황이 다시 올 것도 아닌데 정청래는 왜 광주시민들도 안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망상에 사로잡힌 듯한 말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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