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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윤기권의 증언
 
   전남대 518연구소 사이트 증언자료집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시민군 중 한 인물이었던 윤기권이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경 경찰 15명을 인질로 납치하여 광주민주화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장면을 수록한다.  "탈출에 성공하다/윤기권"이란 제목의 증언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06&page=49 )처음 몇 단락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증 언 자 :윤기권(남)

생년월일 :1962.1.16(당시 나이 18세)

직 업 :고등학생(현재 무직)

조사일시 :1989. 5

개요

고등학교 3년생으로 시위에 참여 18일 동명동 쪽에서 경찰차 부수고 경찰을 인질로 삼음. 30일 MBC방송국, 세무서가 불탈 때 시위대열 속에 있었음. 21일 광주여고 쪽 신흥주유소 앞에서 공수들이 난사한 총알이 팔꿈치를 스침. 26일 밤 YMCA에서 시위대와 함께있다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자 탈출.

민주화의 새봄

나는 전라북도 정읍군 입하면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다 광주로 이사를 했다. 전남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대학생 형들이 데모하는 것을 보고 나는 '왜 그럴까?' 이상하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히 풀어지게 되었다. 어렴풋이 내 주변을 통해 사회의 모순들을 알게 된것이다. 세계사와 세계정치에 관한 책들을 도서관에 처박혀 혼자 공부했다. 자연과학 쪽에는 전혀 취미가 없었고 사회과학 서적에 골몰하게 된 것이다. 특히 대동고등학교 다닐 때 박석무 선생님을 만나 그선생님 시간인 영어시간에 참다운 애국애족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질문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10·26이 일어났다. 박정희가 죽자 민주화의 새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전두환 일당이 나서서 민주화의 싹을 무참히 짓밟아버리고 언론을 장악해 민주운동을 탄압하고 유신독재 체제를 재현하려고 한 것이다. 나는 그래서 1980년 5월에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5월 16일 나는 학교수업을 마치고 도청 앞에 나가보았다. 그날은 마침 횃불시위가 있는 날이었다. 2천여 명의 시위대열을 경찰들은 옆에서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바라보면서 저 있는 듯했다.

경찰을 인질로

5월 18일 일요일이어서 오후에 시내에 나왔다가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곳으로 갔을 때는 페퍼포그차를 앞세운 수많은 경찰들과 5백∼1천 명 가량의 시위군중들이 서로 대치해 싸우고 있었다. 시위대는 돌을 던지고, 페퍼포그차는 시민들을 향해 질주해 오면서 최루가스를 뿜어댔다. 최루탄을 얼마나 많이 쏘아대던지 숨이 막혀 질식할 지경이었다. 시민들은 빠져 나가려고 서로 밀고 넘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사람 죽인다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 청년이 외쳤다. "좁은 골목으로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다치니까 천천히 갑시다." 최루탄을 보아대면 그렇게 흩어졌다가 조금 후에 다시 대열을 지어 격렬하게 시위하였다. 매운 최루가스와 경찰들에게 밀려 현대극장 쪽으로 쫓겨갔다. 그곳에서 다시 대열을 정비하여 천변을 통해 동명동에 있는 동산파출소로 쳐들어가 파출소를 쳐부수고 최규하 대통령 사진을 떼어낸 다음 짓밟아버렸다. 파출소 안에서 근무하던 경찰 둘은 우리들의 기세에 눌려 뒷문으로 도망가버렸다. 4시경 우리는 다시 법원 쪽으로 갔다. 산수동으로 가는 도로에 경찰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파출소를 깨부순 기세로 우리는 쫓아가 돌멩이와 각목으로 마구 두들겼다. 그안에 타고 있던 10∼15명의 경찰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들은 두꺼운 진압복을 입고 있었는데 무기를 들고 있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그곳에서 우리는 투사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 봉선화 등을 불렀다. 또 훌라송에 맞추어 '전두환이 물러가라, 좋다 좋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좋다 좋다' 등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위의 증언을 하고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아 보상금 2억원을 받아챙긴 윤기권은 즉시 월북하였다.  

1991년 3월8일자 광주의 일간지들은 [3월4일, 광주 5.18항쟁 부상자인 윤기권(광주 두암동)이 위대한 수령님과 참조국을 찾아 의거 월북했다...] 고 평양방송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 그(윤기권)는 1980년 5.18당시 광주 대동고등학교 3학년으로서
광주 5.18유족회 회장 전계량씨의 아들 전영진(사망)과 동기 동창이었다.

윤기권은 월북전까지 광주시내 모 극장에서 선전간판 그리는 직업을 갖고있었다.  그는 월북하기위해 광주를 떠나기전에 당국에서
2억여원의 광주보상금까지 수령한것으로 확인됐다.....] (월간 말의 1991년 5월호 "5.18 특집기사")

그밖에도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두려움 없이 투쟁에 참여했던 대동 고교 출신 고 전영진 열사의 친구 윤기권씨(29)는 5·18부상자 동지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지난해 초 광주 보상금 수령 직후 홀연히 월북을 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의 대동고 동창이자 항쟁 당시 YMCA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다 체포됐던 이덕준씨(29)는 그후 전남대에 진학하였으나 노동 현장에 투신, 현재는 광주 노동 청년회에서 활동 중이다. 이씨는 윤기권씨의 월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친구는 평소에 약간 정신이 이상했습니다. 물론 그와 썩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알기로는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좀 엉뚱한 면이 있었지요"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30.html)

5월 광주 항쟁은 윤상원 열사 또래의, 이미 성년이 돼 항쟁에 자각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에게보다는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 학생 시절 항쟁에 참여했거나 비껴 갔던 사람들의 삶에 훨씬 크고 깊숙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전영진 열사(전계량 유족 회장의 아들, 사망 당시 대동고 3년생 )와 친하게 지냈던, 같은 학교 몇몇 친구들의 현재 모습은 그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3월 4일 북한 평양방송은 "5·18 부상자인 윤기권씨(29, 광주 두암동)가 최근 월북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이런 사실은 3월 8일자 광주 지방 신문에 1단 기사로 짤막하게 실렸다. 월북한 윤씨는 지난 1월 상순 영국 등 유럽지역을 여행한다며 2백여만원을 가지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는 상태이며,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2억여원 상당의 광주보상금을 수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9.html )

광주폭동에 열렬했던 공로로 2억원이 넘는 보상을 받은 후 1991년 3월 4일 위대한 수령님과 참조국을 찾아 의거 월북했다는 윤기권(광주 두암동)은 그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지금도 북한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증인으로서 증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북정상회담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0년 5월 25일자 북한 신문에 광주봉기의 "잊을수 없는 최후의 밤/의 거자"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김대중 환영의 의미도 있었던 이 기사를 살펴 보도록 하자.

☞ 북한 신문에 실린 내용.

광주봉기의 잊을수 없는 최후의 밤/의 거자

(평양 5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남조선 광주에 살고 있다가 1991년에 의거입북하여 현재 평양시 교수강습 및 학생답사견학소에서 지도교원으로 사업하고 있는 윤기권이 광주인민봉기 20돐에 즈음하여 <광주봉기의 잊을수 없는 최후의 밤>이라는 제목의 수기를 발표하였다.

 수기는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26일 밤은 하나의 고장으로 생겨 난이래 광주가 맞은 가장 긴장한 하루 밤이였다.

 전두환일당에 의해 5.17폭거가 터지자 광주시민들은 항의시위에 떨쳐 나섰다.그때 나도 같은 또래의 고등학교 동무들과 함께 시위대오에 뛰여 들었다.

 파쑈광들은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댔었는데 이것은 애국시민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였다.폭도는 광주시민들이 아니라 바로 총칼을 마구 휘둘러 댄 그들이였다.

 <유신체제>의  철페를절규한 시민들의 평화적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발톱까지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하여 학살만행을 마구 자행한 자들이 폭도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겠는가.

 사실 나는 자신이 속해 있던 시위대오가 <향군회관>앞 거리에서 처음 파쑈계엄군과 맞다 들었을 때 설마 총을 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였다.느닷없이 귀청을 째는듯한 총성이 울린 순간 지끈하며 한쪽 팔이 떨어 져 나가는듯한 모진 아픔을 느꼈다.흉탄에 맞았던것이다.정신이 아찔해지는 바람에 나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푹푹 쓰러지는것도 미처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오는 주춤한것이 아니라 더욱 노호하였다.이런 사태가 광주의 이거리,저거리에서 일어 났다.말하자면 계엄군이 울린 폭압의 총성은 평화적시위자들을 놀래운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들을 봉기에로 불러 일으킨 신호성으로 되였다.

 광주봉기는 이렇게 해서 일어 났다.

 시간이 흘러 자정이 되고 27일 새벽에 접어 들자 <도청>일대에는 긴박감이 한층 감돌았다.그러나 시민군들의 얼굴들은 근엄하면서도 랑만에 넘쳐 있었다.최후의 순간을 내다 보면서도 그들은 투쟁가를 부르고 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서로 고무하였다.

 그런속에서 갑자기 파쑈계엄군의 도시 재진입을 알리는 다급하면서도 침착한 녀성방송원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거듭 울려 나왔다.

 시민군은 저마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격발기를 당기며 위치를 차지하였다.좀 있더니 땅크,장갑차의 무한궤도 소리가 울리고 총소리,폭음소리가 정신이 나갈 지경으로 울리기 시작하였다.계엄군이 <도청>일대를 포위하고 총공격에로 넘어 간것이였다.총소리가 콩볶듯한속에서 도간도간 계엄군측에서 확성기로 투항하라는 위협적인 소리가 울려 나왔다.시민군측은 이에 <유신체제를 철페하라>,<전두환을 찢어 죽이라>라는 구호의 웨침으로 대답하면서 결사적으로 항전하였다.<도청>건물에서도 항전의 총탄이 뿜어 졌고 내가 있던 기독교청년회관에서도 복수의 불줄기가 계엄군을 향해 뻗어 나갔다.

 <도청>일대에서의 총격전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되여 아침 7시가 넘도록 계속되였다.참으로 가렬한 항전이였다.

 ...

 그 최후의 결전으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그러나 광주애국렬사들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그것은 그간 남조선에서 <문민>의 간판을 달았던 <정권>도 나왔고 <국민>의 명판을 단 <정권>도 나왔으나 달라진것이란 아무것도 없기때문이다.

 이에서 얻게 된 심각한 교훈은 과연 그 무엇이겠는가.그것은 미제침략군이  남조선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한 <정권>이 열번,백번갈려도 변화란 있을수 없으며 반미가 없이는 자주도 민주도 통일도 있을수 없다는것이다.

 이 진리를 깊이 깨달았기에 민중은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 든것이다.민중은 반드시 원쑤들로부터 피의 대가를 받아 내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앞당겨 올것이다.
 나는 광주사태의 증견자로서 이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대표적 유공자였던 윤기권이 남한과 북한에서 한 증언들을 읽어보면서 우리는 이런 궁금증을 품어보게 된다.  그러면 영화 "화려한 휴가" 등장인물 중에서 윤기권을 모델로 한 인물은 누구일까?  실제인물 윤기권이 탈출에 성공하였다고 하니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5월 27일 새벽 도청을 광주시민에게 되찾아주기 위한 상무충정작전 때 탈출에 성공한 시민군이 윤기권을 모델로 한 인물인가?  그리고, "화려한 휴가"의 뒷 이야기, 즉 윤기권이 증언 후 2억여원이 보상금을 수령하고 월북하여 북한에서 증언하며 다니는 이야기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열띤 토론마당


[동영상] 광주사태 일으키려 1980년 3월에 침투한 무장간첩들    

광주사태의 진실: 영화 "화려한 휴가" 실제인물 사진전    

과거사위의 깡통 무식 드러낸 "전두환 자위권 발동 주장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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