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연구사료 광주사태 33주년 기념 신간 5.18 연구도서 "역사로서의 5.18"
역사로서의 5.18 제1권: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역사로서의 5.18 제2권: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역사로서의 5.18 제3권: 광주청문회에서 드러난 5.18 역사로서의 5.18 제4권: 5.18재판 법리의 모순 
광주무장반란 주도한 외지인의 정체 폭로하는 외신사진 The Photo of the Kwangju Uprising Rioters on the New York Times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광주사태 동영상
광주사태 사진
5.18인민재판 법리
광주청문회에서 드러난 5.18
518연구 추천자료
5.18광주사태 유언비어
광주사태 가해자 시민군
광주청문회 동영상
광주사태와 최근시사
북한과 광주사태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광주사태 진실탐구 토론장

광주사태 증언자료 카페

2013년 새 5.18 관련자료

 5.18재판 법리의 모순
5.18광주사태 사진사료
 
  5.18 광주사태 관련 동영상

광주 무장반란 주도한 외지인의 정체 실마리가 담긴 뉴욕타임즈 사진

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에 낫으로 무장하고 광주 톨게이트 인근에 매복하고 있다가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농민들은 누구였는가? 사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는 것이 영영 불가능한가? 그러나 몇 시간 후에 다른 곳에서 그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오전 8시에 낫 들고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괴한들이 9시에는 600 명을 인솔하고 아세아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군용트럭 등 수백 대의 차량을 탈취하였으며, 10시에는 그 차량들을 몰고 다니며 전라도 44개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정오 무렵에는 전남도청 및 전남대 인근에서 무장폭동을 주도하였다. 그 중 다행히도 정오 무렵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있었다. 그 사진의 두 가지 단서는 지프차 탈취범들이 그 날 타고 다니던 20사 지프차 및 낫으로 20사 인솔대 장병들 몸을 찍고 강탈하여 쓰고 다니는 철모 화이버일 것이다.

무장봉기 주동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 날 정오 무렵 금남로에서 엄청난 무장반란이 일어날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주동자들은 각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과 실탄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하여 오전 9시 반부터 전옥주 일행을 도청으로 들여보내며 장형태 도지사와 협상 제스처를 썼는데, 국내 기자들은 모두 이 속임수에 속아 도청 안에 들어가 장 도지사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관광호텔에 있던 몇 명의 외신기자들은 금남로에서 무장반란이 시작되는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었다.    

1980년 5월 21일 도대체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아래 사진은 5월 21일 오전 11시경 노동청 쪽의 풍경이다. 전 날 밤 시위대가 버스로 순경 4명을 압사시킨 곳에서는 또 다른 차량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20일 오후 시위대는 광주에서 눈에 띄는 대로 차량 징발을 하여 차량 돌격이라는 도시 게릴라 방법에 사용하였다. 즉, 도청 주변 군경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어 전경과 군인들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군경 편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한 도시 게릴라전 현장에는 마치 쓰나미가 할퀴고 간 듯이 박살 난 차량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광주폭동 현장

사납게 달려드는 차에 깔리면 죽는데 누가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순경 4명이 깔려죽고 여러 명이 중상을 당한 후에 겁이 나서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21일 새벽이 오기 전에 군경 저지선은 모두 시위대에 의해 돌파되었다. 군경저지선 돌파의 목적은 그 다음 수순인 군사작전이었다. 군용차량을 탄 무장폭도들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 광주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이 순간을 포착한 국내기자가 없어서 한국인은 이 순간을 보지 못했었다.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5.18 재판이 열렸을 만큼 지난 34년간 한국 사람들이 요란스럽게 5.18에 대하여 떠들어댔지만 정작 이 중요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없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바로 그 다음 날짜 뉴욕타임즈지에 실렸었으나, 그 사진 한 장만으로는 외국인들이 그 무장폭도들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바로 그 다음 날짜 뉴욕타임즈지에 실렸었으나, 그 사진 한 장만으로는 외국인들이 그 무장폭도들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지프차 탄 복면 무장폭도들의 정체는 바로 서너 시간 전에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괴한들이었다.

뉴욕타임즈 광주사태 사진

<역사로서의 5.18> 2권 193쪽부터 204쪽에는 농민 50 여명이 오전 8시에 광주 톨게이트 인근에서 낫 들고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사실이 상술되어 있는바, 위의 귀중한 사진에 담겨있는 소중한 단서를 해독하려면 먼저 이 사건을 알아야 한다. 지프차에 탄 폭도들이 쓰고 있는 20사단 철모 화이버가 이 폭도들이 어디서 그 화이버를 구했으며, 네 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 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이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 21사단 인솔대로부터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농민들이 11시경에 어디론가로 이동하고 있다. 지프차에 탑승해 서있거나 앉아있는 네 명의 폭도의 상의는 같은 무늬 계열의 상의, 즉 똑같은 공장에서 제조된 상의이다. 만약 이들이 진짜 농민들이었다면 민간인 개성에 따라 복장이 다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복처럼 복장이 통일되어 있을 때 이것은 군복처럼 일종의 단체복이다. 옷의 상태를 보아도 동시에 지급된 단체복이요, 머리에 백색 수건으로 띠를 띤 것도 통일되어 있다. (5월 21일 오전에 머리에 백색 띠를 두르고 있었던 괴한들은 20일 광주로 침투한 목포의 김대중 계열의 깡패조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힌츠페터와 김영택이 목격한 목포 별동대가 광주에서 무기 분배 를 클릭하면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음.) 도대체 남한 어느 동네 농민 복장이 저렇게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탈취된 20사단 지프차

동아일보 광주주재 사진기자가 찍은 아래 사진에서 20사로부터 탈취한 지프차를 탄 농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20사단 9번 지프차에는 낫으로 9번 지프차 운전병에게 상처를 입히고 빼앗은 철모 화이버를 쓴 폭도가 서 있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는 농사꾼 역시 철모 화이버를 쓰고 있다. 도대체 낫 든 농민으로 위장한 폭도들에게 태극기가 무엇을 의미하였기에 지프차 위에 태극기를 세워 두었을까? 이 경우 폭도들의 태극기는 정체 위장용이었으며, 태극기를 꽂은 지프차가 폭도들의 지휘 차량이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기자가 찍은 폭도들의 지프차

그러면 국군 철모 화이버를 쓰고 서 있는 폭도의 면상을 사진 크기를 줄이지 않고 관찰해 보자. 어느샌간 지프차를 탈취한 농사꾼들의 복장이 바뀌어 있다. 이 폭도의 경우에도 멀리서 일반의 눈에는 공수부대 군복과 식별이 안되는 얼룩무늬 제목을 입고 있다. 목에는 언제고 복면을 할 수 있는 수건을 두르고 있다.

철모 화이버 쓴 폭도

그러면 국군 철모 화이버를 쓰고 서 있는 폭도의 면상을 사진 크기를 줄이지 않고 관찰해 보자. 어느샌간 지프차를 탈취한 농사꾼들의 복장이 바뀌어 있다. 이 폭도의 경우에도 멀리서 일반의 눈에는 공수부대 군복과 식별이 안되는 얼룩무늬 제목을 입고 있다. 목에는 언제고 복면을 할 수 있는 수건을 두르고 있다. 바로 이 폭도가 1980년 5월 22일 뉴욕타임즈 대문기사 사진 맨 앞의 폭도이다. 정체 위장용 및 폭도들의 지휘차량 표시로서 태극기가 걸려 있는 똑같은 지프차를 타고 있는 동일인물이다. 그때는 폭도가 태극기로 정체를 위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폭도의 철모 화이버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광주사태 34 주년에 폭도의 정체가 드러났다. 지프차를 탄 이 폭도 일행이 바로 오전 8시에 낫 들고 21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농사꾼들이었다. 농사꾼은커녕 일반 시민들도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 유유히 앉아있지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서 당황하여 중심을 잡지 못하면 옆으로 굴러 떨어져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모험인 것이다. 

뉴욕타임즈 5월 22일 기사 사진

농민처럼 낫을 든 괴한들이 20사로부터 탈취한 열 네 대의 지프차들 중 위 사진은 도청 함락에 동원된 지프차들이다. 같은 시간에 몇 대의 지프차는 전남대를 함락하기 위해 전남대 인근에 동원되었다. 그 쪽에 있던 아래 지프차가 금남로 쪽에 있던 위 지프차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범퍼에 역시 20사단에서 갓 탈취한 지프차임을 보여주는 번호 20C가 있고, 역시 정체 위장용 태극기가 걸려 있으며, 멀리서 보면 군복처럼 보이는 제복을 입은 무장폭도가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 능숙하게 앉은 채로 M-16소총을 들고 있다. 이 사진은 시민군이 M-16으로 무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물이요, 시민군 중 M-16으로 무장하고 달리는 지프차 본넷 위에서도 능숙하게 M-16을 파지하고 있는 이 복면폭도가 바로 그 날 낮 12시경 전남대 인근 평화시장에서 임산부 최미애씨를 사살한 시민군이다. 21일 민간인 총기 희생자 발생 원인에 대하여 여기서 드러나는 사실은 그 날 오전 8시경 20사로부터 지프차를 탈취한 그 무장세력이 바로 최미애씨 가해자였다는 사실이다.

M16으로 무장한 시민군

5월 21일 광주 시가지에서 M-16을 난사하며 다니던 이 무장폭도의 사진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6월 2일자 뉴스위크지에 실렸다. "한국에서 반란이 일어나다"(Rebellion in Korea)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 하단의 복면 무장폭도는 위 사진의 복면 무장폭도와 동일 인물이다. 일간지 뉴욕타임즈 사진처럼 주간지 뉴스위크 표지 사진도 지프차 본넷에 앉아있는 복면 무장폭도들이 뒤를 따르는 무장단체 지휘관들이었음 보여준다. 

80년 6월 2일 뉴스위크

1980년 5월 21일 정오 무렵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이 두 사진을 한국인들은 전혀 보지 못하고 외신에만 실린 채 오랜 세월 파묻혀 있었다. 5월 22일자 뉴욕타임즈 지에 실린 사진을 일본인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서 먼저 5월 22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실렸다. "폭도들이 광주를 완전 장악했다"(Rioters Take Full Control Of Kwangju)라는 제목의 이 기사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5월 23일 힌츠페터가 두번째로 광주 방문을 하던 날 일본에서 가져와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벽보에 게시된 때부터였다. 광주 시내 벽보에 이 신문이 나붙은 때와 거의 동시에 미국 시간으로 5월 22일 같은 사진이 뉴욕타임즈 지에 게제되었다.

1980년 5월 22일자 마이니치 신문

1980년 5월 22일자 뉴욕타임즈

우리가 지금껏 살폈듯이 5월 21일 오전 농민 복장으로 낫 들고 20사단 인솔대를 습격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무장단체가 정오경부터 금남로 일대와 전남대 인근에서 무장봉기를 총지휘한 세력이었다. 이 무장폭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마이니치 신문과 뉴욕타임즈와 뉴스위크에 박혀 있었으며, 광주사태 34주년 앞 두고 사진 속의 인물들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폭도들의 낫으로 내려 찍으며 20사단 인솔대 운전병들에게서 빼앗은 철모 화이버를 쓰고 있는 모습이 1980년 5월 22일 뉴욕타임즈 표지 기사에 박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 윗글을 읽고 역사로서의 5.18 제2권: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를 읽으시면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되실 것이며, 이미 읽으신 분들에는 윗글이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글 작성일: 2014년 1월 23일

이 글을 옮겨가실 때 사용하실 출처 링크는 http://www.study21.org/518/photo/5-21.htm 입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조작한 뉴욕타임즈지 기사

복면에 가려진 5.18의 비밀을 복면 암호 해독으로 풀기

힌츠페터와 김영택이 목격한 목포 별동대가 광주에서 무기 분배

목포 김대중 계열 별동대 5월 20일 총기 무장하고 광주 침투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영상물에 나타난 시민군 최초무장시점

 

광주사태의 진실탐구 자료실

 














 

[BBC동영상 뉴스 칼럼][아마존 북스토어][미국시사해설][영화][동영상][광주사태 검색][광주사태 관련 새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