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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시민군의 우방은 미국인가 북한인가?



1982년 3월 18일 오후 2시 부산의 미국 문화원 건물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1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그 불로 1층 도서관 열람실에 있던 동아대생 장덕술이 사망하고 김미숙 등 3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범인은 광주사태 주동자였던 김현장의 선동을 받은 문부식 등 고신대생 학생들이었다. 아래 동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어 1985년 5월 22일에도 서울의 미국 문화원이 강제 점거된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1980년대에 수차례 있었던 미국문화원 방화 및 점거사건의 동인은 "미국은 5.18광주시민군의 우방이었는가?" 하는 의문이요, 미국이 5.18광주시민군을 배신하였다는 분노감이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미국은 5.18광주시민군과 별 우호적 관계도 적대적 관계도 아니었다. 단지, 광주시민들이 5.18사기꾼들에게 속았을 뿐이었다.

이 사건의 발단은 1980년 5월 22일경부터 5.18사기꾼들이 유포한 대자보로 거슬러올라간다. 미 7함대의 항공모함에 대한 유언비어가 적힌 이 대자보에 대해 이법철 스님은 이렇게 서술한다:

<광주거리의 도처에는 벽보의 대자보(大字報)가 시민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대자보는 하얀 대형종이에 검은 매직 글씨로 광주시민에게 결사투쟁을 하자는 선동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자보에 강조되는 부분에는 붉은 매직 글씨로 “미 7함대의 항공모함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부산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과 부산, 대구, 등의 전국의 도시의 시민이 무장봉기하여 광주를 지원하고자 곧 도착할 것이니 조금만 참고 결사투쟁하자는 선동이었다. 도대체 누가, 미국의 항공모함의 병력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출동했다고 하며, 전국의 도시에서 무장시민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출동했다는 선동을 시작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허망한 새빨간 거짓말로 시민군의 결사항전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http://cafe.daum.net/518cafe/IEXM/13 )

5.18측은 여전히 그 5.18사기꾼들의 거짓말을 맹신하면서 소설을 쓰는데, 그 한 예가 박호재의「다시 그 거리에 서면」이란 제목의 서술에서 다음의 단락들이다:

<"언니, 저 벽보 봐"
순분이가 가리킨 곳에 큰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미국 항공모함 부산 앞바다에 정박중.

우리의 우방인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나라입니다. 광주의 민주시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금 부산에 미국 항공모함이 정박 중에 있습니다. 더 이상 광주는 피를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들은 동요하지 마시고 도청에 집결합시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546.html 의 5.18소설들 중에서 "다시 그 거리에 서면" 6항)

부산에 미국 항공모함이 정박 중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톱뉴스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으며, 서울을 비롯한 타지역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인민군 10만이 개성과 해주에 집결해 있다는 정보에 따라 미 제7함대, 미드웨이호가 요코스카에서 출항한 때는 아직 광주사태가 발발하기 전이었던 5월 17일 아침이었던바, 그날 동경T일보의 기자가 조선일보 일본특파원에게 전한 소식은 이러하다:

<<[일본 방위청내 통합참모회의실]에 9시쯤 정보확인을 부탁한 후, 특파원은 " 확인된 내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요코스카의 미7함대 사령부 작전처 00대령에 따르면 항모 미드웨이와 기함블루릿지 등이 특수임무부대(Task Force)를 편성, 17일 04시 요코스카를 출항했다고 합니다."는 정보의 사실 확인을 한 후 출동목적이 "정보에 따르면 북위 38도, 동경 126도(해주)부근에 병력 10만이 집결해 있으며 지원포와 탱크 등의 배치상태로 미루어 대남공격이 임박했음을 징표하는 것이라 합니다. 미7함대의 출동은 이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만 함대사령부 측은 곧 우리 통합막료회의에 정식 통보할 것이라고 합니다." >>



위사진에서 보듯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스테니스호(CVN 74.9만7000t급)가 2009년 3월 11일 오전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 부두에 입항하고 있음을 조선일보는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11/2009031100375.html 에서 보도한다. 그런데, 지금 이 뉴스는 그다지 특종뉴스는 되지 못한다. 한미합동훈련 때 항공모함이 입항하는 것은 예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사태 때는 그야말로 특종감이었다. 한미합동훈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미국이 항공모함 두 대를 급파하였다는 것은 북한의 전쟁도발 징후가 있는 때임을 암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도형 기자는 특종을 터뜨린다는 흥분에 들떠 있었지만 그 기사는 끝내 보도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전쟁위기감을 자극할 그 뉴스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경제 각료들이 반대하였기 때문인데, 그 과정을 이도형 기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인쇄직전 1면 머리에 대문짝같이 크게 뽑힌 "북괴군 10만 해주부근에 집결•美7함대 출동" 제하의 태장은 검열에서 통과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검열은 그 후 몇 차례나 엎치락뒤치락했다. "괜찮다. 실어라", "안된다"가 자그마치 7차례나 되풀이 된 것이다. 그 배경은 이러했다. 조선일보의 5월18일자(1980년) 동경특파원발 기사는 한국군당국과 국내 각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와 일치되었다.

5월 17일 오후 늦게 당시 신현확(申鉉碻)총리 주재하에 긴급각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조선일보 기사는 열띤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申총리를 비롯, 김종환내무, 주영복 국방, 박동진외무 그리고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등, 안보관련 각료들은 조선일보의 동경 발신(이도형 특파원발신)기사가 정보당국의 정보와 일치하며 정확하며,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 게재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한빈 경제기획원장관, 정재석 상공장관 등 경제관련 각료들은 일제히 안보각료들의 주장에 반대했다. 가뜩이나 민심은 흉흉하고 수출이 위축되고 경제지표는 하락일로인데 아무리 사실이라도 그처럼 위기감을 더해주는 기사가 보도되면 격앙된 민심을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이 보도불가의 이유였다. 그러느라고 각의는 춤을 추었고, 검열당국은 그때마다 결심을 뒤집곤 하는 것이었다. (....)

어쨌든 그 기사는 불발되고 말았다. 안보각료에 대해 경제각료들이 이긴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북괴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각종 첩보와 정보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위기를 되도록 축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논단 1996.1호, "1980년 5월 광주·해주 그리고 평양 !!!")

그러면 미 항공모함 두 대가 왜 입항하였는가? 당시 북한은 1980년 5월초 전시사령부를 구성,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전시사령부는 남조선의 데모가 확대되고 광주사태가 다른 도시들로 확산될 경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원병의 기능을 담당할 참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 무력부' 직할 '전시사령부'는 특수게릴라 훈련을 받은 강력한 124군부대 등 10만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주력부대가 휴전선과 수도서울에 근접한 황해남도 해주와 개성 부근에 집결했던 것이다. 주한미군 정보기관은 바로 이들을 인공위성 사진으로 잡은 것이다. 일본 요꼬스카에 있던 미7함대 항모 미드웨이를 주축으로 한 태스크 포스(함재 폭격기와 함포 및 상륙부대를 주축으로 한 특수임무부대)가 구성되어 한반도 해역으로 급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 특종기사는 보도되지 않았기에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할 목적으로 미국 항공모함 두 대가 부산과 제주도에 입항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독 광주는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입항했다는 대자보로 꽉 차 있었다. 5.18측은 광주사태 때 광주는 통신이 단절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어떻게 타 지역 국민들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김대중의 국민연합 사무총장 윤상원의 아지트가 당시 좌익서점 녹두서점이었으며, 김대중의 심복이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이종찬이었다. 그리고, 5월 18일 녹두서점 주인 김상윤의 동생 김상집에게 형 친구라면서 괴전화가 걸려와 5월 22일경 미 항공모함이 부산항에 입항할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유언비어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미 항공모함 입항 정보에 대한 윤상원의 본래의 반응은 광주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반미하면 광주시민들이 등을 돌릴 거라며 주변에서 만류하니깐 윤상원이 미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하라는 지시를 거두고, 말을 180도 바꾸어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벽보로 붙이게 하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윤상원 동지로서 전남 사회문제 연구소 연구원인 임낙평은 이렇게 서술한다:

<이즈음 윤상원을 비롯한 투쟁 지도부는 미국의 개입, 즉 미 항공모함의 내항, 미국의 동향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논의했다. 그들은 미국이 전두환의 살육 만행을 묵인 방조하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였지만 한편으로 전두환 일파가 군을 장악하지 못했다고 보고 미국이 살인 군부에 지지를 보낼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의 시민 대중들은 친 미 반공 의식에 젖어 있어 반미의 문제를 섣불리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 항공 모함의 입항을 전두환 군부의 견제로 해석해 대자보나 궐기대회를 통해 발표하였다. 거기에는 미국이 살인 군부의 만행을 저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 있었다. 윤상원 등 일부는 광주 주재 미국인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 그들을 체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4.html 에서 마지막 작은 제목 "윤상원등 지도부의 미국인식정도" 이하 두 단락. )

5.18유언비어가 퍼져나가는 유형의 특징 중 하나가 소문의 출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유언비어도 윤상원이 즉흥적으로 지어낸 유언비어였다. 윤상원이 그런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친미의 입장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유언비어를 지어내기 직전에 미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하라고 지시했던 행동은 엄연한 반미 행동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유언비어가 증폭된 또 하나의 유언비어 "외국 우방들이 광주봉기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는 실로 괴이하지 아니한가! 도대체 광주봉기군을 지원하는 우방이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만약 그것이 불순세력이 퍼뜨린 유언비어였다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분명히 북한이 광주봉기군을 지원하려 하였다.



광주사태 때 김정일의 지령으로 조총련이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위 동영상 중반부에서부터 북한의 광주사태 생방송 장면이 잠깐 비쳐진다. 북한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광주사태 생방송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래 사진에서 보듯 광주봉기군을 지지하는 군중대회를 개최하였다. 분명 북한의 시각에서 광주봉기군은 그들의 우군이었다. 더구나 위 동영상에서 보듯 광주봉기군을 지지하는「방송보도戰」은 金正日이 직접 지휘한 보도전이었다. 日本에서 발간되는 朝總聯기관지는 金正日의 각종 활동상을 소개하는 「향도의 로정」 기획시리즈에서 金正日이 지난 80년 5월 20,21일 양일간 『광주인민봉기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고무하는 방송보도전을 힘있게 벌려나가도록 이끌어 주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장비로서는 초대형 장비에 5.18청년호라는 대형 클자가 새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아래의 북한 사진 역시 북한의 시각에서 광주봉기군은 그들의 우군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래의 광주봉기군 사진에서 우리는 그들 중에 국적불명의 군복차림을 한 자들이 있었음을 본다. 도대체 철모는 어디서 구한 것이었으며, 시민군에게 왜 철모가 필요하였다는 말인가? 과연 이 사람들이 광주시민들이었을까? 언뜻 보기에 군경과 시민을 복장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철모까지 쓰고 "외국 우방들이 광주봉기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것은 대한민국과 전쟁을 하자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외국 우방이란 미국이었는가 북한이었는가? 만약 미국이었다면 어째서 대표적 시민군 윤기권을 2억의 보상금을 수령한 직후 월북하였는가?



북한 대표단이 5.18묘지를 공식 참배했음을 보여주는 아래의 신문기사 역시 북한이 광주봉기군을 우군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준다. 비가 내리는 데도 비를 맞으며 참배하였다. (참고로 최미애 주부도 계엄군 총이 아니라 시민군 총에 희생당하였음.) 미국의 항공모함의 병력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출동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5.18사기꾼들의 논리대로라면 광주봉기군을 우군으로 여긴 북한은 미 항공모함의 출동을 대환영하여야 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미 항공모함의 출동을 북한이 환영하는가?



그리고, 5.18유언비어 나팔수 역할을 했던 김현장이 부추기는 대로 고신대 운동권이 미국문화원에 방화해야 할 이유라도 있었는가? 만약 그들이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유언비어에 속은 것이 분했다면 그 책임은 속인 자에게 물어야지 왜 엉뚱하게 미 문화원에 방화하였는가? 이제 우리는 5.18측에 그 유언비어 대자보에 대하여 따져 물어야 한다. 만약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고 그들이 퍼뜨렸던 소문에 애초부터 아무런 근거가 없었던 것이라면 5.18주장과 논리는 처음부터 거짓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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