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대선 공약이 '국민이 행복한 나라'였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생활고로 인한 존속 살해가 많기에 국민이 행복했던 전두환 정부 시절과 비교해 보게 된다. 그 시절에는 일자리가 넘쳐났고, 누구에게나 중산층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다. 그 단적인 예가 이재명이다. 가난해서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이재명도 학비 걱정 없이 법대에 진학하여 생활비도 넉넉하게 지원받으려 대학교 다니다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기에 그 시절에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존속살해 사건이 이재명 정권 출범 이후 종종 발생하는데, 세계적인 인권성지이며 세계에서 민주화운동이란 용어 치장을 가장 많이 하는 도시 광주에서 특히 자주 발생하고 있다. 엊그제 1월 13일에는 광주 북구 용두동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아들이 노모의 목을 졸라 살해한 존속살해사건이 발생하였다. 살인범도 사형에 처하지 않는데 왜 이재명은 윤석열 대통령 사형을 주문하는가? 희생자 검시 기록 4매
방송에서 광주학살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지난 40여년간 계속 보여준 장면이 상무관에 안치된 관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그 관들은 계엄군이 모두 철수하고, 경찰이 모두 도망간 광주해방구에서 시민군들이 초보, 음주, 과속 운전하다가 낸 교통사고 희생자들이었고, 더러 총상 사망자들도 있었으나 무장폭도들만 가지고 있었던 칼빈총에 의한 총상 희생자들이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도 상무관 관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가해자가 군인들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교통사고를 낸 시민군들, 총기오발사고, 총기난사 사고 등 총기사고를 낸 무장청소년들과 무장폭도들이었다. 희생자 검시 기록 4매
광주시민들 중 아무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본 적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광주시민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두환 광주학살 유언비어는 어디서 왔는가? 그 유언비어의 뿌리는 가톨릭센터 1층 꽃집 주인이 후송되는 장면이었다. 5월 19일 낮에 수십 명이 사망하였던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의 광주시민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가톨릭센터에 불을 지르려 했던 시위군중이었다. 시위대가 불붙은 솜방망이로 불을 붙이려는 순간 임정하씨가 발로 걷어차 떨어뜨린 후 짓밟아 불을 끄자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임정하씨 머리를 때려 의식을 잃게 하였다. 다행히 위생병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와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고, 그 군용 들것으로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 등 몇 사람이 전남대 병원으로 후송하였다. 이렇듯 군인들이 임정하씨의 생명의 은인이었음에도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 왔다는 유언비어가 이때부터 생겨나 국군이 광주학살 누명을 쓰게 되었다. 기사 사진 포함 사진 3장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무장폭도들을 처음에는 학생혁명군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광주사태가 끝난 후에 시민군이라고 불렀는데, 학생혁명군은 전남대 학생들이 아니라 가짜 대학생들이었다. 2010년 5월 18일자의 연합뉴스 사진은 북한의 광주인민봉기 제30돌 기념행사에서 광주에서의 학생혁명군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 북한의 5.18유공자 세 명이 맨 앞줄에 나라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사 사진 포함 사진 3장
광주에서 오늘 12월 23일에도 또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세계적인 인권의 성지 광주에서도 성지 중의 성지가 양림동이다. 무장폭동을 사전 기획하였으며, 5.18기념재단 설립자인 윤한봉의 집이 양림동에 있었고, 윤한봉의 절친 황석영의 집도 양림동 윤한봉 집 옆에 있었다. 황석영이 소련군 탱크부대 노래의 곡을 표절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장소도 양림동이었다. 양림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황석영의 반미좌파 문학의 산실이었다. 이런 5.18의 성지에서 오늘 비극적인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도대체 이재명의 오월정신이 무엇이기에 이재명이 광주 가서 "오월정신으로 빛의 혁명 완수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하면 오월정신으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재명의 5.18묘지 참배 포스팅에 달린 댓글 질문 "다같이 자수하러 가는 길인가요?"가 눈길을 끈다. 기사 사진
나는 한강 작가와 사기꾼들과 미개인들과 개딸들에게 묻고 싶다. 광주에 갑자기 괴무장난동자들이 나타나서 전남도청과 도경찰국과 광주시청과 광주지방법원을 점령하고 광주는 더 이상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고 선언하며 해방구를 설치하고 시내와 주택가에서 함부로 총을 펑펑 쏘고 다니며 많은 사상자들이 생기게 하고 있었을 때 정부는 어떻게 하여야 했는가? 무장난동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으므로 생필품이 광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정부가 무기반납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과도정부 최규하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무기를 반납하지 않겠다고 하였을 때 정부가 엿새 이상 더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 광주사태 사진 4장
이해찬은 1988년의 광주청문회 때 1968년의 흑산도 무장공비 사진을 들고나와 1980년 5월의 광주사태 때 공수부대가 학살한 광주시민들의 사진이라며 큰소리로 사기쳤다. 10년 후 김대중은 이 5.18사기꾼을 발탁하여 교육부 장관에 임명하여 5.18을 성역화하는 교과서를 만들게 하였다. 그런데 채동욱 등 8명의 5.18 떡검들이 이해찬보다도 더한 사기꾼, 5천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기꾼들이다. 사기꾼들 중에서 가장 악독한 사기꾼들이 법복 입은 사기꾼들이다. 한국에서는 공소사실과 판결문이 법복 입은 사기꾼들이 미개인들 대상으로 사기치는 도구로 악용되었다. 1997년 4월의 5.18재판 판결문을 읽어보면 최악의 엉터리 판결문임에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판결문을 읽어보지 않는다. 전두환의 내란이라는 말을 이 여덟 명의 떡검들이 만들어냈다. 떡검들은 무장폭도들은 헌법기관이라는 법리를 만들어냈었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법리로 무장폭도 상대편이, 즉 진압군이 내란범이라는 황당한 궤변을 만들어냈다. 관련 사진 3장
문재인이 1980년 5월 15일 서울 남대문 앞에서 경희대 학생들이 경찰관 여러 명을 버스로 깔아뭉개 죽인 사건의 주동자였으므로 원래는 문재인의 사법고시 합격은 취소되었어야 했다. 문재인의 정치는 처음부터 수상하였다. 1980년 5월 15일의 버스 테러가 문재인의 정치의 시작이었는데, 그때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그 버스를 경찰관 살인 병기로 사용한 폭도들은 경희대 학생들이 아니라, 학생으로 위장한 북한군 특수군이었다는 의혹이 있다. 자기가 인솔한 시위대였으니 그 폭도들의 정체에 대해서 말할 책임이 문재인에게 있는 것인데 여태까지 그 점에 관해서는 입을 꾹 담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사법고시 합격 후에는 간첩 변호를 인권변호라고 사기친 것도 수상하고, 2017년 5월 정권 찬탈 후 즉시 종북정책을 실시하다가 판문점에서 usb를 김정은에게 넘긴 것도 수상하다. 기사 사진
김건희 여사도 혜경궁도 모두 숙명여대 출신이다. 즉, 김건희 여사와 혜경궁의 전쟁은 숙명여대 동문들끼리의 전쟁이다. 그런데 필체로 보면 배우자를 배우지라고 맞춤법도 틀리게 삐뚤삐뚤 글씨를 쓰는 혜경궁과 글씨가 정갈하고 내용도 심오한 글을 쓰신 김건희 여사 중 누가 숙명여대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였는가? 이재명이 자꾸만 자기 마누라의 숙명여대 동문 김건희 여사의 학위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에 묻는 질문이다.
육영수 여사의 필체와 혜경궁의 필체를 비교해 보면 지금 한국 정치만 괴물독재정치로 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부인의 필체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실감케 된다. 육영수 여사는 외모만 국모의 위엄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인격이 준비된 영부인이었음이 글씨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혜경궁에게서도 '민족중흥' '중용지덕' 등의 사자성어로 표현되는 애국심과 철학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혜경궁이 '배우자'를 배우지라고 쓸 때의 필체가 독특하다. 글씨가 명필이 아닌 것은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글씨 가장자리에 적당히 여백을 남겨두시는 육영수 여사와 달리 혜경경은 삐뚤체 글씨를 테두리 선에 걸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