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윤석열과 이재명이 대선 후보로서 링 위에서 붙었을 때 두 대선 후보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즉 이해찬이 김대중 진영 운동권 수장으로서 한창 활약하던 시절에 쓴 친필 글씨가 공개되었다. 그 중 하나는 윤석열 서울대 법대 학생이 후배 신용락에게 쓴 장문의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명이 1980년 9월 19일 고등학교 졸업 자격검정고시에 응시하던 때 쓴 일기이다. 이 날의 일기에서 이재명은 자기가 짝사랑하던 여성을 통일교 합동결혼식에 빼앗겼을 때는 느낀 실연의 상처를 표현하였다. 그래서인지 이재명은 훗날 통일교 학교 선화예고 출신 김혜경과 결혼한다. 이재명은 자신의 이 일기장이 무슨 대단한 문학 작품이라도 되는 듯 공개하었겠지만 '얘기'를 '예기'라고 쓰는 등 그 시절에도 이재명은 허접한 내용을 틀린 맞춤법으로 쓰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반면 윤석열 학생은 김춘수의 서시에 대한 감상을 독일어 전문용어로 표현하는 등 문학 분야에도 풍부한 교양실력을 축적하고 있음이 돋보인다. 윤석열의 편지와 이재명의 일기
1961년 5.16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한국은 연필을 생산할 능력도 안 되는 나라였다. 그 당시 한국제 연필은 굵은 젓가락 같은 나무에 구멍을 내고 조야하게 흑연을 박은 연필이었는데, 연필을 깍으면 부서지고 종이에 글씨를 쓰면 흑연가루가 번져 종이를 새까맣게 하고 글씨를 쓰는 손가락에도 흑연이 묻어 까매졌다. 그래서 한국제 연필은 최하류층이 사용했고, 미국의 달러 원조로 심지어 연필조차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었다. 그런 나라에서 1960년대부터 공장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지어진 공장인데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5천년 역사에서 유일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였다. 말로만 공장을 지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각 공장의 설계도와 공정을 암기하고 계셨으며, 직접 시찰하여 공장이 설계도대로 지어졌는지, 공정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하셨다. 그 시절 박정희 없는 산업화는 불가능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영상
미국 유학 후 박정희는 1955년 1군사령부 예하 5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따라서 왼쪽 사진은 1955년과 1956년 사이에 찍힌 사진이다. 미군이 버린 지프차에 드럼통을 두들겨 만든 지붕을 얹어 시발택시라 이름을 붙인 것이 한국의 첫 택시 등장이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미군이 버린 음식이 오늘날 유명한 부대찌개의 시작이었다. 그 가난했던 시절 박태준과의 만남의 일화가 있었다. 1947년 9월에 소위에서 대위로 진급하여 조선경비사관학교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사관생도들에게 탄도학을 가르치던 박정희는 어려운 미분 문제를 척척 푸는 생도를 기특하게 여기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 생도는 일본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를 2년 수료한 수학의 천재 박태준이었다. 5사단장 시절 박정희는 옛 부하 박태준을 다시 만나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에 대한 비전을 함께 나누었다. 내란장사를 하는 이재명의 눈에는 5.16군사혁명이 내란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한국의 산업화에 헌신한 지도자였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 2장
(2)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볼 때 박정희는 미국이 키운 지도자였다. 이 사진은 1952년 한국전쟁 중 미국 정부가 비밀광복군 출신 한국군 장교 박정희를 유학 초청하기 직전의 사진으로 보인다. 소령이 대령들 사이 중앙에 있는 모습은 그 시절 이미 박정희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1952년에 미국국무성이 제3세계 엘리트 장교들을 초청하는 유학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는데, 한국에서는 비밀광복군 출신 박정희가 선발되었다. 미국 유학이 하늘에 별따기였던 시절 미국에서 정치와 경제와 민주주의 행정을 공부한 엘리뜨 장교들이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뜨였다. 박정희는 오늘날의 장교같은 장교가 아니었다. 그는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실전 경험이 쌓인 장교였다. 비밀광복군 출신 전략 장교 박정희는 적군의 작전을 정확히 예측하는 오늘날의 제갈량이었다. 그런 그의 통찰력이 1960년대부터 경제 전쟁의 시대에 우월한 경제전 전략을 펼치게 하였다. 5사단장 시절의 박정희 사진
문재인과 윤미향 같은 배타적 국수주의자들, 소녀상팔이들을 극우라고 한다. 반일, 반미하는 그런 국수주의자들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인데 문재인의 경우 애국을 위한 국수주의도 아니었다. 극우 문재인의 국수주의는 그의 종북이념을 위한 국수주의였다. 문재인은 오로지 김정은 대변인 역할을 하며 김정은에게 충성하기 위한 정치를 했었다. 그런 문재인의 반일(反日)과 달리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극일(克日)을 하셨다. 지금 한국은 전두환 대통령이 육성하고 발전시킨 반도체 산업으로 먹고 살고 있다. 그 반도체 기술을 일본에 직접 달라고 하면 주지 않는다. 전두환 대통령은 미국을 지렛대로 이용하여 일본이 반도체 기술을 한국에 주게 하는 외교를 하셨다. 문재인은 반일은 일본이 박근혜 정부 시절 주기로 하였던 위안부 할머니 보상금마저 못 받게 하는 반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반도체 기술과 함께 경협자금 40억 달러를 제공하게 한 전두환 대통령의 극일 외교가 한국에 국익이 되는 외교였다. 기사 캡처 2장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은 취약계층을 돕는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업무추진비 예산이 없었던 시절에 정치자금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김대중은 국정원 예산을 쌈짓돈처럼 무한정 갖다 썼다. 그것은 범죄였지만 노무현도 따라서 했기에 그 후에 그것이 관례가 되었다가 문재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원 예산 4억원 쓴 것을 엮어 박대통령을 처벌한 후 자기는 대통령 업무추진비 예산을 만들어 펑펑 썼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 업무추진비를 0원으로 깍은 이재명이 자기도 업무추진비를 안 쓰면 이재명을 조금은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두 배 이상으로 올렸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은 월급을 10%씩 취약 계층을 위해 기부하였는데, 이재명 일당은 기부는커녕 자기네 월급만 펑펑 올려놓았다. 생각해 봐라. 누가 대통령이라도 이재명이 대통령 업무추진비를 0원으로 깍아놓고 장관 35명을 탄핵하면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기사 캡처
문재인과 이재명이 원래 대장동 경제공동체였다. 2003년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광주의 노사모 간부들이 건설회사를 설립하고 부산저축은행 예금을 사금고처럼 사용하며 땅 투기를 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대장동 아파트 부지였다.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변호사 문재인이 민정수석이었을 때 금융감독원이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를 조사하려 하자 문재인이 금감원에 압력을 넣어 조사하지 못하게 하였다. 부산저축은행에서 9조원이 사라진 후 부산시민들이 문재인을 고발하였을 때 그 사건 담당검사가 윤석열이었는데, 그 사건을 덮어 문재인의 정치생명을 구해주었고, 대장동 건도 그때 덮였다. 2017년 1월에 문재인과 이재명이 경선하였을 때 이재명의 대선공약이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하겠다는 것이었고, 경선에서 이긴 문재인이 이재명의 그 대선공약을 물려받아 윤석열을 검찰총창에 임명한 것이 나중에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다리를 놓아준 셈이었다. 이렇듯 이재명이 윤석열을 대통령 만드는데 기여한 것이다. 기사 캡처 2장
이재명이 약속한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개딸들에게는 실현되었다. 이재명이 외국에서 빌려온 돈으로 퍼주면 게이바 가는데 쓰고, 모바일 게임에 쓰는 개딸들에게는 헤어나올 수 없는 기초수급자 생활의 맛이 '국민이 행복한 나라'의 실현이다. 이재명의 공약과 정책에도 개딸들의 머리 속에도 미래는 없다.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되든 이재명은 상관않고 외채 끌어다 퍼주고, 미련한 개딸들은 지금은 일 안 해도 게이바 가고 모바일 게임하는데 쓸 돈을 이재명이 따박따박 주지만 미래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되고, 일자리를 구해도 베네수엘라 수준으로 월급 봉투가 얇아지게 될 것을 내다보지 못한다. 기사 사진
이재명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에 이어 또 해냈다. 전과자주권정부 하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신한카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재명이 잘하는 일 중 하나가 사회에서 신용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개딸들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다. 계엄이 성공하였는지의 여부는 별도로 이래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선포하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개딸들이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개인 정보가 여기저기서 털털 털리는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냐? 개딸들의 개인정보는 안 털려? 기사 사진
광주에서 오늘 12월 23일에도 또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세계적인 인권의 성지 광주에서도 성지 중의 성지가 양림동이다. 무장폭동을 사전 기획하였으며, 5.18기념재단 설립자인 윤한봉의 집이 양림동에 있었고, 윤한봉의 절친 황석영의 집도 양림동 윤한봉 집 옆에 있었다. 황석영이 소련군 탱크부대 노래의 곡을 표절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장소도 양림동이었다. 양림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황석영의 반미좌파 문학의 산실이었다. 이런 5.18의 성지에서 오늘 비극적인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도대체 이재명의 오월정신이 무엇이기에 이재명이 광주 가서 "오월정신으로 빛의 혁명 완수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하면 오월정신으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재명의 5.18묘지 참배 포스팅에 달린 댓글 질문 "다같이 자수하러 가는 길인가요?"가 눈길을 끈다. 기사 사진
이재명의 정교유착은 그 뿌리가 아주 깊다. 이재명이 2022년에 통일교와 정교유착을 하고 통일교 서열 3위를 더불어민주당 선거담당 핵심 실무자로 임명하였던 이재명은 이미 2014년에는 대순진리회 표로 성남시장에 재당선되기 위하여 대순진리회에 최소 4억원의 뇌물을 주었다. 이재명은 이미 그때부터 돈을 주고 표를 사는 부정선거를 하였다. 대순진리회 표로 성남시장에 다시 당선된 이재명은 보은하기 위하여 2016년에 대순진리회 김찬성 회장에게 감투를 주었다. 곧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할 이재명이 김찬성 회장에게 준 감투는 또 다시 대순진리회 표를 사기 위한 뇌물이었다. 2014년에 이재명이 대순진리회에 표값으로 최소 4억원을 주었을 때 자기 돈으로만 준 것이 아니라, 김만배에게서 받은 돈을 주었다. 이것이 대장동게이트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남욱과 김만배로부터 4억 이상을 받은 이재명은 그 대가로 남욱과 김만배가 수익의 가장 큰 파이를 가져가는 대장동 개발을 하였기 때문이다. 기사 사진
문재인은 숫자의 마법사이며, 투표와 개표의 통계숫자의 마법이 문재인의 4.15부정선거의 증거이다. 1970년대부터 연방제 적화통일을 지지하였던 불교신자 문재인이 2021년에 로마 교황을 방문한 날이 바로 할로윈 데이였다.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하는 불경스러운 날에 문재인이 로마 교황에게 연방제 적화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136개의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를 주고, 불교신자 문재인이 십자가의 의미를 연방제 통일 염원으로 바꾸는 전시회를 십자가와 촛불로 하였다. 그로부터 딱 1년 후 이태원에서 할로원 데이 참사가 발생하고, 1차 장례식날 136개의 촛불이 켜졌다. 즉, 문재인의 연방제 적화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숫자136과 정확히 일치하는 136명의 장례식이 치러진 것이다. 단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136이란 숫자의 일치 아닌가? 아무튼 숫자의 마법사 문재인에게서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사 사진 3장
세월호 참사는 문재인의 작품이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소장 이정미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자마자 문재인이 전라도로 달려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얘들아 고맙다"는 방명록을 작성하였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이용되었다. 그런데 문재인이 악당인 이유는 세월호 참사를 박 대통령 탄핵에 이용한 문재인이 바로 세월호 참사 원인제공자였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참사는 유병언의 변호사였던 문재인이 유병언에게서 양산 저택을 뇌물로 받은 후 2008년 2월에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유병언의 은행 빚 1천억을 국고로 대신 갚아주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유병언은 문재인에게서 받은 나라돈으로 일본의 폐선을 구입하여 세월호라는 이름을 붙이고 운행하였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더욱이 문재인은 2013년의 해상사고 예방 법안 통과를 민주당 당론으로 막았기에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처럼 위험한 선박의 해상사고를 예방할 수단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기사 사진
이재명이 내란장사꾼이라면 문재인은 위안부 할머니 장사꾼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의 문제는 그가 파렴치한 철면피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 정부와 잘 협상하여 일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2억씩 드리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이 더불어성추행당 대표였을 때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 두 배 이상 더 받게 해주겠다며 할머니들이 받지 못하게 선동하였다. 문재인의 약속을 믿고 할머니들이 기다렸다. 그러나 반일감정 선동꾼이 대통령이 되자 일본 정부는 한푼도 못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문재인이 시간 끄는 사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할머니들이 윤미향에게 속았고 문재인에게 속았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자기 때문에 억대의 일본 보상금이 날아간 할머니들에게 이제껏 단 한마디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 그 뻔뻔스러운 낯짝이 두꺼운 것이다. 기사 캡처
기탄핵의 원흉 문재인은 정치지망생 시절부터 사기꾼이었다. 문재인은 간첩 변호가 인권변호라고 사기친 사기꾼이었다. 정치지망생 시절 문재인이 5.3동의대 사건, 즉 폭도들이 경찰관 7명을 불에 태워 살해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폭도들이 경찰관 7명을 불에 태워 죽인 사건은 작년 2024년 1월 19일의 서부지법난입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사건이었다. 서부지법과 차은경 검사의 불법행위에 항거한 의로운 서부지법난입 사건 때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손가락 하나 다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5.3동의대 사건 때 폭도들은 인질 경찰관들을 가두어 두고 불을 질러 불에 타 죽게 하고, 유독가스에 죽게 하였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수용소 독가스실에 가두고 질식사하게 한 나치의 살인 수법과 비슷한 살인이었다. 그때 폭도들을 변호한 문재인은 훗날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이 되었을 때 폭도들을 민주유공자로 만들어 주었다. 경찰 살인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하면 테러 범죄인데 한국에서는 민주유공자? 기사 캡처
오늘 2025년 12월 15일 오전에 혜경궁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 함께 공식 방한한 날리 시술릿 여사와 환담 쇼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혜경궁은 정말로 자기를 조선시대 혜경궁으로 착각을 하는 것인지 조선시대 여인들처럼 뒷머리에 비녀를 꽂았는데,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를 꽂았다. 라오스 영부인과 잠깐 환담 쇼하기 위해 혜경궁이 또 새로 한복을 맞추어 입었는데, 전통혼례 치루는 것보다 더 요란하게 가꾸었다. 비싼 한복도 법카 긁어 맞추어 입었는가? 잠깐 환담 쇼하기 위해 저 머리 모양을 만드는데 얼마나 긴 시간을 썼을까? 김건희 여사는 영부인 외교할 때 대화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미는데 시간 쓰지 않고 옷은 평소의 검소한 옷차림 그대로였다. 왼쪽 사진은 2022년 11월 15일에 김여사가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부인 이리아나 여사를 만나 1시간쯤 환담하는 모습이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내로남불교 교주들이다. 지금 내란 재판을 하고 있지만 이재명이 정죄할 때는 내로남불교 교리에 따른 정죄를 한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되신 후에는 공식 행사와 외교를 위해 옷이 필요하셨는데, 대통령이 직접 옷 맞추러 갈 수 없기 때문에 친구 최순실이 옷 심부름을 해주었다. 대통령이 돈을 주시면 최순실이 저렴한 가격에 옷을 만들어주는 장인을 찾아서 치수에 맞게 옷을 만들어 갖다 드렸다. 2016년에 문재인과 이재명이 인상 쓰며 사나와졌다. 최순실이 자기 돈으로 옷을 만들어주었으면 대통령이 뇌물 받은 것으로 엮어 탄핵 꼬투리를 잡으려 하였다. 그런데 서민용 한복을 입으셨던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무당 스타일 한복을 선호하였던 정수기는 최고급 원단으로 가장 비싼 한복을 만들었는데 문재인이 정수기의 옷값 출처를 40년간 비밀해제가 안 되게 해놓았다. 혜경궁은 주모의상과 무수리 옷에서 시작하여 상궁과 중전마마의 한복을 계속 만들고 있는데 그 옷값 출처는 왜 안 밝힐까? 기사 사진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한복을 입으며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린, 한복 외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좌파 매체들은 이를 두고 비선 실세가 특정 한복 디자이너와 업체를 밀어주며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는 프레임을 씌워 왜곡했다. 박근혜 대통령 한복 사진전
P(4) 한국미와 품위가 느껴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차림 박근혜 대통령 한복 사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