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동댐 드럼통이 신나게 국가 해체를 하고 있다. 나라를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는 쉽지 않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 건국을 하실 때는 부마사태까지 일으키며 반대하고 방해하던 자들이 지금 독재자 왕따이밍이 국가 해체를 하고 있을 때 모두 침묵하고 있다. 이재명이 안보 해체를 하고 있을 때 이재명의 내란몰이가 무서워 장군들이 침묵하다가 군복이 벗겨진 채 강제로 예편되었다. 친중 종북 이념으로 눈앞의 사익만 추구하는 이재명이 한국 경제를 베네수엘라행 나락으로 몰고가고 있는데도 이재명의 내란몰이가 무서워 경제학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그래서 안보와 경제 모두 대통령에게 맡기고 국민은 생업과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다. https://www.instagram.com/p/DTnmrSrkZEk/ 인스타그램 비디오
미국 유학 후 박정희는 1955년 1군사령부 예하 5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따라서 왼쪽 사진은 1955년과 1956년 사이에 찍힌 사진이다. 미군이 버린 지프차에 드럼통을 두들겨 만든 지붕을 얹어 시발택시라 이름을 붙인 것이 한국의 첫 택시 등장이었던 시절이다. 그리고 미군이 버린 음식이 오늘날 유명한 부대찌개의 시작이었다. 그 가난했던 시절 박태준과의 만남의 일화가 있었다. 1947년 9월에 소위에서 대위로 진급하여 조선경비사관학교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사관생도들에게 탄도학을 가르치던 박정희는 어려운 미분 문제를 척척 푸는 생도를 기특하게 여기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 생도는 일본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를 2년 수료한 수학의 천재 박태준이었다. 5사단장 시절 박정희는 옛 부하 박태준을 다시 만나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에 대한 비전을 함께 나누었다. 내란장사를 하는 이재명의 눈에는 5.16군사혁명이 내란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한국의 산업화에 헌신한 지도자였다. 박정희 사진 2장
1961년 5.16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한국은 연필을 생산할 능력도 안 되는 나라였다. 그 당시 한국제 연필은 굵은 젓가락 같은 나무에 구멍을 내고 조야하게 흑연을 박은 연필이었는데, 연필을 깍으면 부서지고 종이에 글씨를 쓰면 흑연가루가 번져 종이를 새까맣게 하고 글씨를 쓰는 손가락에도 흑연이 묻어 까매졌다. 그래서 한국제 연필은 최하류층이 사용했고, 미국의 달러 원조로 심지어 연필조차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었다. 그런 나라에서 1960년대부터 공장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지어진 공장인데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5천년 역사에서 유일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였다. 말로만 공장을 지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각 공장의 설계도와 공정을 암기하고 계셨으며, 직접 시찰하여 공장이 설계도대로 지어졌는지, 공정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하셨다. 그 시절 박정희 없는 산업화는 불가능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영상
❤계엄사령관 육군 대장 정승화, 대통령 시해사건 공범. ❤사건현장 근처에서 김재규의 범행을 인지한 정승화는 김재규 편에 서서 사실을 은폐하고, 수사를 방해하면서 계속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합동수사본부장, 보안사령관 육군 소장 전두환,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책임자. 💚대통령 시해사건의 합법적인 수사책임자가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시해공범을 구속수사하지 않았다면, (근무태만+직무유기+내란방조)입니다. 💙시해공범 정승화가 순순히 수사에 응했고 측근들이 미쳐서 덩달아 날뛰지 않았다면 무력충돌은 없었을 것입니다. 💙12.12는 대통령 시해사건의 합법적인 수사책임자인 전두환 육군 소장의 살신성인적인 직무수행입니다. ❤사건수사의 합법적인 수사책임자가 결심하고 몸을 던져서 범인을 구속수사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나서야 합니까? 기사 사진
유병언 변호사였던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 비서실장 시절 유병언의 채무 1천억원을 국가가 대신 갚아주게 함으로써 유병언이 일본에서 폐선을 구입하여 세월호 명칭을 붙이고 다시 해운업을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훗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게 하였다. 동의대에서 경찰관 7명을 가두고 불을 질러 살해한 살인범들 변호사였던 문재인은 훗날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 시절에 그 살인범들을 민주유공자로 만들어 주었다. 기사 사진
김건희 여사도 혜경궁도 모두 숙명여대 출신이다. 즉, 김건희 여사와 혜경궁의 전쟁은 숙명여대 동문들끼리의 전쟁이다. 그런데 필체로 보면 배우자를 배우지라고 맞춤법도 틀리게 삐뚤삐뚤 글씨를 쓰는 혜경궁과 글씨가 정갈하고 내용도 심오한 글을 쓰신 김건희 여사 중 누가 숙명여대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였는가? 이재명이 자꾸만 자기 마누라의 숙명여대 동문 김건희 여사의 학위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기 때문에 묻는 질문이다.
육영수 여사의 필체와 혜경궁의 필체를 비교해 보면 지금 한국 정치만 괴물독재정치로 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부인의 필체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실감케 된다. 육영수 여사는 외모만 국모의 위엄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인격이 준비된 영부인이었음이 글씨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혜경궁에게서도 '민족중흥' '중용지덕' 등의 사자성어로 표현되는 애국심과 철학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혜경궁이 '배우자'를 배우지라고 쓸 때의 필체가 독특하다. 글씨가 명필이 아닌 것은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글씨 가장자리에 적당히 여백을 남겨두시는 육영수 여사와 달리 혜경경은 삐뚤체 글씨를 테두리 선에 걸쳐 놓았다.
육영수 여사는 항상 볼펜으로 자신의 사진 위에 서명을 하셨는데, 살짝 흘려 쓴 볼펜 글씨도 보는 이의 눈이 힐링되게 하는 천하명필이다. 글씨체에 힘이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고상한 여성미가 느껴지는 글씨체이다. 한 획 한 획에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런 명필을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https://www.study21.org/isunja/audiobook/memoir_11.html
오늘 2025년 12월 15일 오전에 혜경궁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 함께 공식 방한한 날리 시술릿 여사와 환담 쇼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혜경궁은 정말로 자기를 조선시대 혜경궁으로 착각을 하는 것인지 조선시대 여인들처럼 뒷머리에 비녀를 꽂았는데,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를 꽂았다. 라오스 영부인과 잠깐 환담 쇼하기 위해 혜경궁이 또 새로 한복을 맞추어 입었는데, 전통혼례 치루는 것보다 더 요란하게 가꾸었다. 비싼 한복도 법카 긁어 맞추어 입었는가? 잠깐 환담 쇼하기 위해 저 머리 모양을 만드는데 얼마나 긴 시간을 썼을까? 김건희 여사는 영부인 외교할 때 대화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미는데 시간 쓰지 않고 옷은 평소의 검소한 옷차림 그대로였다. 왼쪽 사진은 2022년 11월 15일에 김여사가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부인 이리아나 여사를 만나 1시간쯤 환담하는 모습이다.
안동댐 소년범이 자신의 범죄를 속이고 훗날 전과자주권정부 수괴의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한 힌트가 성남 '소년범' 조진웅이 지금까지 과거 안 들킨 이유에 있다. [서울경제] 배우 조진웅의 10대 시절 범행을 일부 인정한 가운데 그의 과거가 드러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전파를 탄 MBN ‘김명준의 뉴스파이터’에 출연한 장윤미 변호사는 “(소년범의 경우) 일반 형사기록과 달리 처분된다”며 “전과기록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인이 열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재명과 조진웅은 무슨 관계로 친할까? 조진웅의 고향이 성남이었다. 이재명의 이종조카는 중학생 시절부터 성남 국제마피아 조직원이었고,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는 등 전과 20범인 조카를 변호하던 이재명이 성남 국제마피아 법률고문이었다. 성남에서 소년범이었던 조진웅과 중학생 시절부터 성남 국제마피아 조직원이었던 이재명 조카가 동네도 나이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