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가짜 5.18유공자가 된 김민석도 5.18유공자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5.18유공자들도 그들의 반국가 정체성의 표시로서 김민석처럼 역방향 태극기, 좌우로 뒤집힌 태극기 달거나 위아래로 거꾸로 달린 태극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재명도 대한민국 전복 세력이었던 5.18유공자들처럼 종종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달았다. 5.18유공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의 표시, 스스로 내란세력임을 과시하는 행동이다. 만약 이재명과 김민석이 5.18 반역세력처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으려는 의도로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단 것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태극기 배지 다는 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이재명과 김민석은 김건희 여사를 찾아가서 무릎 끓고 태극기 배지를 바로 다는 방법을 사사받아야 한다. 사진에서 평범한 서민의 옷을 입어도 김건희 여사가 태극기 배지를 다셨을 때는 국격이 올라간다. 태극기를 뒤집은 5.18유공자들과 이재명과 김민석 사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군인이 여대생 유방을 베어 죽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진실은 이렇다. 광주사태 때 단 한 명의 여대생 사망자도 없었다. 5월 21일의 총소리는 군인들이 쏘는 집단발포가 아니라, 무장시민들이 쏘는 총소리였다. 그날 무장시민들의 총기난사 희생자 몇 명 중에 최승희가 있었는데 광주시민이 아니라 목포에서 온 송원전문대 1학년 학생이었다. 이 남학생 이름이 최승희라 이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혼동한 시민군들의 입을 통해 국군에 큰 누명을 씌우는 악성 유언비어가 등장하였다. 무장시민이 쏜 칼빈 총상 희생자 최승희 검시 기록
방송에서 광주학살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지난 40여년간 계속 보여준 장면이 상무관에 안치된 관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그 관들은 계엄군이 모두 철수하고, 경찰이 모두 도망간 광주해방구에서 시민군들이 초보, 음주, 과속 운전하다가 낸 교통사고 희생자들이었고, 더러 총상 사망자들도 있었으나 무장폭도들만 가지고 있었던 칼빈총에 의한 총상 희생자들이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도 상무관 관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가해자가 군인들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교통사고를 낸 시민군들, 총기오발사고, 총기난사 사고 등 총기사고를 낸 무장청소년들과 무장폭도들이었다. 희생자 검시 기록 4매
힌츠페터 영상에 보면 상무관에 여러 개의 관들이 놓여있고 유족이 오열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관들은 무장난동자들이 초보, 음주, 난폭운전을 하여 낸 교통사고 희생자들의 관이었다. 이렇듯 5.18유공자들이 그 사건 가해자들이었음에도 공수부대 집단발포라는 허황된 유언비어를 지어내서 국군에 학살 누명을 씌우고 광주학살 프레임을 만든 것이었다. 희생자 검시 기록 4매
광주시민들 중 아무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본 적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광주시민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두환 광주학살 유언비어는 어디서 왔는가? 그 유언비어의 뿌리는 가톨릭센터 1층 꽃집 주인이 후송되는 장면이었다. 5월 19일 낮에 수십 명이 사망하였던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의 광주시민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가톨릭센터에 불을 지르려 했던 시위군중이었다. 시위대가 불붙은 솜방망이로 불을 붙이려는 순간 임정하씨가 발로 걷어차 떨어뜨린 후 짓밟아 불을 끄자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임정하씨 머리를 때려 의식을 잃게 하였다. 다행히 위생병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와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고, 그 군용 들것으로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 등 몇 사람이 전남대 병원으로 후송하였다. 이렇듯 군인들이 임정하씨의 생명의 은인이었음에도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 왔다는 유언비어가 이때부터 생겨나 국군이 광주학살 누명을 쓰게 되었다. 기사 사진 포함 사진 3장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무장폭도들을 처음에는 학생혁명군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광주사태가 끝난 후에 시민군이라고 불렀는데, 학생혁명군은 전남대 학생들이 아니라 가짜 대학생들이었다. 2010년 5월 18일자의 연합뉴스 사진은 북한의 광주인민봉기 제30돌 기념행사에서 광주에서의 학생혁명군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 북한의 5.18유공자 세 명이 맨 앞줄에 나라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사 사진 포함 사진 3장
사기꾼들의 새빨간 거짓말과 달리 1980년 5월 18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던 것이 아니라,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에 선포되었다. 5월 18일 0시에는 단지 제주도가 계엄지구에 포함되었을 뿐이다. 미개인들은 5월 18일부터 계엄령 이슈로 온 사회가 뜨겁에 달아올랐던 것으로 잘못 알거나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제주도가 계엄지구에 포함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비상계엄령 전국확대가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는 전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전혀 무관심하였으며, 아무도 계엄령을 대화의 소재로 삼지 않았었다. 지금 계엄령이 뜨거운 이유는 두 명의 사기꾼 한동훈과 이재명이 계엄령 선포는 내란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프레임을 위한 역사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hffVx2vtIFc 유튜브 링크
나는 한강 작가와 사기꾼들과 미개인들과 개딸들에게 묻고 싶다. 광주에 갑자기 괴무장난동자들이 나타나서 전남도청과 도경찰국과 광주시청과 광주지방법원을 점령하고 광주는 더 이상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고 선언하며 해방구를 설치하고 시내와 주택가에서 함부로 총을 펑펑 쏘고 다니며 많은 사상자들이 생기게 하고 있었을 때 정부는 어떻게 하여야 했는가? 무장난동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있었으므로 생필품이 광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정부가 무기반납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과도정부 최규하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무기를 반납하지 않겠다고 하였을 때 정부가 엿새 이상 더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었는가? 광주사태 사진 4장
이해찬은 1988년의 광주청문회 때 1968년의 흑산도 무장공비 사진을 들고나와 1980년 5월의 광주사태 때 공수부대가 학살한 광주시민들의 사진이라며 큰소리로 사기쳤다. 10년 후 김대중은 이 5.18사기꾼을 발탁하여 교육부 장관에 임명하여 5.18을 성역화하는 교과서를 만들게 하였다. 그런데 채동욱 등 8명의 5.18 떡검들이 이해찬보다도 더한 사기꾼, 5천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기꾼들이다. 사기꾼들 중에서 가장 악독한 사기꾼들이 법복 입은 사기꾼들이다. 한국에서는 공소사실과 판결문이 법복 입은 사기꾼들이 미개인들 대상으로 사기치는 도구로 악용되었다. 1997년 4월의 5.18재판 판결문을 읽어보면 최악의 엉터리 판결문임에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판결문을 읽어보지 않는다. 전두환의 내란이라는 말을 이 여덟 명의 떡검들이 만들어냈다. 떡검들은 무장폭도들은 헌법기관이라는 법리를 만들어냈었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법리로 무장폭도 상대편이, 즉 진압군이 내란범이라는 황당한 궤변을 만들어냈다. 관련 사진 3장
6.25전쟁 당시 인민군과 부역하는 좌익들에게 가장 많이 학살당한 곳은 전라도였다. 수많은 우익 인사들과 경찰,기독교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다. 전북 익산 옆 강경은 조선시대에는 원산항과 더불어 2대 포구였고 대구,평양 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불리웠던 곳이다. 최초로 침례교회가 세워졌고 신사참배 반대와 반공정신이 투철한 신앙인들이 많았다. 그 중 병촌성결교회는 74명의 교인들 중 66명이 인민군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심지어 만삭의 몸으로 어린 아이를 안은 채 생매장 된 여인도 있었다. 체제 전쟁 중인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는 어떠한가. 광주사태를 보도한 노동신문 기사
5.18정신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광주사태가 일어난지 십 여 년이 지나도록 5.18이란 단어가 없었다가 북한이 해마다 5.18을 국가행사로서 성대하게 기념하니까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에 북한 따라하기로 5.18기념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북한에서 5.18이란 명칭도 수입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재명이 자기가 노동신문을 읽어보았으니까 매년 50억씩 구독료를 내고 강제로 구독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재명이 언제 노동신문을 읽었을까? 노동신문에는 한국 그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던 이재명과 김현지의 시민단체들의 반정부 활동이 상세히 보도되어 있다. 우리는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말을 이재명이 2016년에 처음 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에 박근혜 대통령께서 이재명의 정치기반인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을 내리자 이미 그때부터 북한은 박대통령을 죄인 취급하고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라는 지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기사 사진
문재인이 1980년 5월 15일 서울 남대문 앞에서 경희대 학생들이 경찰관 여러 명을 버스로 깔아뭉개 죽인 사건의 주동자였으므로 원래는 문재인의 사법고시 합격은 취소되었어야 했다. 문재인의 정치는 처음부터 수상하였다. 1980년 5월 15일의 버스 테러가 문재인의 정치의 시작이었는데, 그때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그 버스를 경찰관 살인 병기로 사용한 폭도들은 경희대 학생들이 아니라, 학생으로 위장한 북한군 특수군이었다는 의혹이 있다. 자기가 인솔한 시위대였으니 그 폭도들의 정체에 대해서 말할 책임이 문재인에게 있는 것인데 여태까지 그 점에 관해서는 입을 꾹 담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사법고시 합격 후에는 간첩 변호를 인권변호라고 사기친 것도 수상하고, 2017년 5월 정권 찬탈 후 즉시 종북정책을 실시하다가 판문점에서 usb를 김정은에게 넘긴 것도 수상하다. 영상 및 책 갈무리
광주에서 오늘 12월 23일에도 또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세계적인 인권의 성지 광주에서도 성지 중의 성지가 양림동이다. 무장폭동을 사전 기획하였으며, 5.18기념재단 설립자인 윤한봉의 집이 양림동에 있었고, 윤한봉의 절친 황석영의 집도 양림동 윤한봉 집 옆에 있었다. 황석영이 소련군 탱크부대 노래의 곡을 표절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장소도 양림동이었다. 양림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황석영의 반미좌파 문학의 산실이었다. 이런 5.18의 성지에서 오늘 비극적인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도대체 이재명의 오월정신이 무엇이기에 이재명이 광주 가서 "오월정신으로 빛의 혁명 완수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하면 오월정신으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재명의 5.18묘지 참배 포스팅에 달린 댓글 질문 "다같이 자수하러 가는 길인가요?"가 눈길을 끈다. 기사 사진